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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생활수기공모(당선작)

제2회 [우수상] 기다림의 즐거움 (정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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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illden / 작성일202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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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녀왔습니다. 아, 추워.”

  “그래, 어서 오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아이에게서 찬 기운이 전해져왔다.


  “엄마. 집이 너무 춥다. 밖에 서 있는 것 같은데?”


 집에 들어오면 하는 수순으로 옷을 갈아입고 한차례 씻고 나온 아이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쯤 높아졌다. 순간 나와 아이의 시선은 벽에 걸려있는 달력으로 향했다. 11월 28일.

 

 “아, 이틀 남았어.”

  “여기로 와서 앉아, 전기 매트 틀어서 따뜻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기매트 위로 앉는 아이를 보며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12월 1일. 우리 모두 기다리는 이 날은 공식적으로 보일러를 틀 수 있는 날이다. 그러니까 실질적인 겨울이 시작되는 날이다. 창밖을 보니 하늘은 미세먼지 주의보에 걸맞은 회색빛 얼굴을 내밀고, 그 모습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내 어린 시절의 겨울은 사뭇 다른, 그냥 두어도 저절로 살아 숨 쉬는 모습이었다. 

 봄날이면 뒷산에 올라 냉이. 쑥 같은 나물을 캐며 두둑함으로. 초록빛으로 한껏 몸을 부풀린 여름이면 나무 그늘이 만들어주는 시원함으로, 하루마다 한 뼘씩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에는 융단처럼 펼쳐진 은행잎을 주워 책갈피에 꽂아두는 고운 꿈으로. 높고 낮음 없이 온 세상을 하얀 눈으로 골고루 덮어주는 겨울이면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둘러 앉아 군고구마를 먹는 맛있는 즐거움으로. 


 그 후로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삼한사미’라는 말이 자연스러워진 것처럼 미세먼지가 일상화되어버렸다. 그러다보니 외출할 때면 일회용 마스크가 필수품이 되었고 어느 곳에나 공기청정기가 자리 잡고 있다. 마음 놓고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지냈던 때가 언제쯤이었는지.


 최첨단 시대로 4차 산업혁명이나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낯익은 요즘.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과학의 발달로 생겨난 각종 문명의 이기들은 생활의 편리함은 물론 좀 더 건강하고 오래 살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반면 편리함을 우선으로 자연환경을 무분별하게 개발함으로써 생태계가 파괴되어가고 각각의 전자재품 사용으로 탄소발생량이 늘어감으로써 이상기후에 지구 온난화까지 심각한 문제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우리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보다는 더 편리하고, 더 기능이 좋고, 더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으니.


 자연이 살아 숨 쉬는 날을 보냈던 나는 아직도 그 때처럼 생활하고 있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베란다에 그릇을 늘어놓고 비를 받아 화분에 주고, 밥을 담은 그릇을 장롱 이불 속에 묻어두기도 하고, 세탁기나 냉장고 같은 전자제품은 한 번 사면 고장이 나도 서비스 센터에 수리를 해서 족히 20년은  써야 바꾸고, 선물 받은 상자나 포장지. 하물며 포장 끈도 버리지 않고 모아두어 다시 쓰고. 결혼하기 전에 입었던 옷을 지금도 갖고 있어 이제는 아이가 다시 입을 정도로 무엇이든 쉽게 버리지 못한다. 


 거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를 아껴 쓰는 게 환경을 보호하는 일이라는 나름의 가치관으로 여름에는 8월 1일부터 에어컨을 트는 것으로, 겨울이면 12월 1일부터 보일러는 트는 법칙을 만들어 지켜가고 있다. 식구들은 처음에는 웃음으로 그러려니 했었는데 막상 지키려고 하니 생각보다 덥고 추워 투덜거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한 번 틀기 시작하면 계속 틀어야 한다는 내 말에 어느새 우리 가족 모두 잘 지키고 있다. 오히려 그 날을 기다리는 은근한 즐거움도 갖게 된다. 거기에 겨울이면 보일러를 틀기보다는 거실 바닥에 두툼한 매트를 깔아 차가운 기운을 막고 추우면 전기장판을 틀어 생활하다보니 정말 보일러를 틀 때 지불하는 가스요금이 많이 줄었다. 더불어 그만큼 환경을 보호하는 일이라 여기니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곤한다. 

 생활이 좀 불편하더라도 지금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혜택으로부터 벗어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다시 쓰고, 바꿔 쓰는 습관을 기르고 환경을 보호하는 일은 작은 것 하나라도 실천해야 한다. 


  “아, 빨리 12월 1일이 되었으면.”

  “자, 이거 안고 있으렴.”


 나는 품에 안고 있던 보온 물주머니를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우리는 마주보며 웃었다. 환한 웃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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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den님의 댓글

Willden / 작성일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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