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입선] 수도꼭지 물 새는 소리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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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illden / 작성일2023-05-23본문
똑- 똑-
수도꼭지에서 물 새는 소리가 난다. 그러면 늘 아빠가 나타나신다. 수도를 잠그고, 환경을 보호해야 하지 않겠냐고 이야기하시면서, 수도꼭지를 덜 잠근 범인을 – 주로 나였지만- 혼쭐내셨다. 그러면 나는 늘 입술을 내밀고 아빠한테 볼멘소리하기 일쑤였다. 환경 파괴의 위험에 일말의 관심도 없던 시절의 나는 아빠의 말에 전혀 동의하지 못했으니까.
나름 경제학과를 재학 중이던 내 생각은, 꽤 간단했다. ‘아니, 어차피 물값도 경제학적 논리잖아. 어차피 물값은 정해져 있는데. 정말 물이 부족하다면 수요-공급 법칙에 따라 물값이 비싸지겠지. 근데 아직 그 정도도 아닌데, 물 부족을 이야기한다고? 아빠 혼자서 너무 앞서 나가는 것 아냐?’라고 이야기하며. 나는 내 생각이 지극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해 왔다.
바로 그 경제적 ‘합리성’이 우리의 지구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른 채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어느 산. 그곳에서 군 복무를 했던 나는, 첫해의 가을 굉장히 이상한 경험을 했다. 산이 워낙 높기에 상수도 시설은 없었고, 군부대 밖 높은 곳에 설치된 우물을 통해 물을 공급받아야 했던 우리 부대 전 장병에게, ‘물 사용 금지’ 명령이 떨어진 것이었다. 빨래도, 샤워도, 심지어 머리 감기도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더 이상 물이 부족하다면 밥을 해 먹을 물조차 부족해질 테니까. 해결 방법은 비가 오는 것이었는데, 비가 오는 일은 없었다. 전 장병이 다른 부대에 가서 목욕하고 왔고, 물을 길어 왔을 정도였으니 그해 가을의 가혹함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알 수 있으리라.
그렇게 가물어가는 물에 힘들어하는 병사들을 모아놓고, 부대장님께서는 “너희들, 집에서 물 펑펑 썼을 때가 그립지?”라며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지금 왜 물이 부족한지, 지금 대안을 찾고 있는데 그 대안 찾기가 왜 어려운지 하나하나 차분히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물의 소중함에 대해서 한참을 이야기 해 주셨다. 그리고 그중에서는 내가 평소 품고 있는 생각 자체를 허물어주시는 말씀도 있었다. 알고 보니, 아파트에서 살았던 내가 물을 쓰는 데는, 단순히 수요-공급의 문제를 넘어서 고리처럼 얽히고설킨 환경의 문제가 있다는 사실 말이다.
간단히는, 물을 아파트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사용되는 전기가 필요했고, 그 전기는 석탄발전으로 미세먼지를 불러일으키며, 그 미세먼지는 우리의 수명을 직접적으로 깎는 원인이었다.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한 수단 – 선박 – 건조와 운용에 따라 발생할 수밖에 없는 막대한 에너지와 탄소발자국은 물론, 선박을 운용하기 위한 '선박유 제조'까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환경의 연쇄적 파괴가 선행되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환경 파괴는 지구온난화를 불러일으키고, 환경을 바꿔 수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야기하고 있다. 환경과 동물은 물론, 유난히 취약계층이 많이 사는 지역일수록 더더욱 심하게.
그래, 환경은 연쇄였다.
나는 그동안 그 ‘연쇄’를 생각하지도 않고, 단순히 일방적인 경제적 논리로 반박해 온 것이다. 얼굴이 붉어졌다. 확실하지 않은 지식으로 그동안 낭비해 온 물과 전기 그리고 차량 공회전과 같은 에너지 낭비까지. 이 모든 사소한 행동들이 우리 환경에 끼치는 영향은 그 얼마나 막대한 것일는지, 내가 직접 몸으로 겪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군 생활 동안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석 달 정도의 고생 끝에, 눈이 왔고 눈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면서 가뭄 상황은 종결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뒤로 지금까지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 양치 컵을 활용하고, 샤워 시간을 최소화하고 있다. 비누칠할 때면 물을 잠그고 세탁은 최대한 몰아서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수도꼭지를 꽉 잠가서 물 한방울도 낭비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있다.
어쩌면 지구온난화가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다는 보고가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이 연쇄 하나하나를 아끼고, 보호하고, 지켜낸다면 지구는 자신이 갖고 있는 자정 작용으로 우리를 품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이 지구에서 환경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