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장려] 도롱뇽 (홍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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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illden / 작성일2025-05-23본문
동그랗고 톡튀어나온 까만 작은 눈, 촉촉한 피부, 작은 발가락, 긴 꼬리 그리고 두줄의 알덩이. 이 정도 설명이면 도롱뇽!하고 답이 나올까?
도롱뇽은 왜 이름이 도롱뇽일까? ‘대롱거리는 용’이라는 뜻일까?
응답하라1988 드라마에 별명이 도롱뇽인 친구가 있었다. 별명이 왜 도롱뇽일까, 닮았을까? 하는 직업적 의문이 들었었는데 그건 아니라는.. 이름이 ‘유동룡’이라서 그렇게 불렀기에 진짜 도롱뇽하고는 하등에 관계가 없었다.
도롱뇽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2013년이던가, 그때는 수원환경운동센터에 청소년하천지킴이 ‘가람’이라는 청소년 모임이 있었다. 중학교 아이들이 모임에 들어오면 고등학교때까지 주욱 이어가는 모임이었다.
아이들은 한달에 두 번 모여 상광교동 통신대로 향하는 길입구에 있는 수로에서 양서류를 관찰하고 기록하고 지키자는 취지로 활동을 했다.
2013년 4월, 그날도 어김없이 아이들은 수로에서 알덩이를 세고 있었다. 매년 알덩이의 수를 기록해서 변화가 있는지 알아보는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친구가 달려오더니 ‘선생님~ 큰일났어요. 할아버지 한분이 도롱뇽 알을 드시고 계셔요!’ 아이들이 5년동안 활동해 오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었고 나에게도 처음이었다. 말로만 듣던 보양문화?를 직접 보게 된 것이다.
옛날에는 힘든 겨울을 보내고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해 먹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다니.. 아이들은 놀랐겠지만 침착하게 할아버지와 대화를 이어갔다. ‘저희는 양서류 서식지를 보호하고 있고 지금 할아버지가 드시고 있는 도롱뇽 알은 보호종이어서 드시면 안되요’. ‘도롱뇽 알이 몸에 좋아. 너희가 활동한 시간보다 우리가 여기에 살면서 알을 지켜 본 시간이 더 길어.’ ‘할아버지, 지금은 도롱뇽알보다 더 좋은 음식과 영양제가 많아요.’하면서 아이들은 30분정도 설득을 이어갔다.
할아버지가 그 자리를 떠나시고 아이들은 나와 함께 이야기를 이어갔다.
- 옛날에는 도롱뇽이나 개구리 알, 성체를 몸보신용으로 드시는 어른들이 계셨다는 이야기를 아버지께 들었다.
- 그 할아버지도 그렇게 드셔오셨던 분 중에 하나였을뿐 도롱뇽을 해치려고 하시는 분은 아닌 것 같다.
- 우리가 이런 활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보호하자고 더 많이 알려야 겠다.
나의 힘을 빌리지 않고 할아버지와 대화를 이어갔던 아이들이 너무나 대견스러웠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누군가 도롱뇽알을 먹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우리가 못 본 것일수도 있겠지만..
이 아이들의 이런 활동이 서식처를 지키는데 있어 큰몫을 했다. 알이 어떻게 생겼고 어디에 살고 생김새가 어떠한지 관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식처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일은 더 없이 소중하다. 나중에 지킴이 친구중에 한명은 이런 활동들을 토대로 ‘봄날 봄햇살보다 따뜻한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만들었고 수원시에서 동화로 각색을 해서 환경교육 영상자료로 활용하기도 했다.
2024년 그동안 우리가 지켜오던 서식처에 변화가 있었다. 2023년 큰비에 도로가 유실되었고 그곳은 군사도로 였기 때문에 보수하는 과정에서 수로가 흙수로에서 시멘트수로로 바뀌게 된것이다. 흙수로에는 산에서 흘러 나오는 물이 자연스럽게 고여 동∙식물이 어우러져 있던 곳이다. 그곳은 그동안 수많은 양서류들이 번식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아이들과 시민들그리고 동네사람들이 20년 이상 함께 보호해왔던 곳이 어느날 갑자기 변해버린 것이다.
흙수로인 상태로 두면 도로가 유실되어 안전상에 문제가 된다는 이유이고, 그 부분에 동의는 하지만 더 오랫동안 그곳에서 살아왔던 생물들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었던 것이다.
공사후 시멘트수로에서 우리는 많은 양서류들을 구조했다. 우리가 그동안 알을 세고 성체를 발견한 숫자보다 더 많은 큰산개구리와 도롱뇽이 거기에 갇혀 있었다. 그렇게 많은 도롱뇽들이 거기에 살고 있는 줄 몰랐다. 구해준 도롱뇽은 수십마리에 였으니.. 보이는것만 믿는 인간들이 얼마나 아둔한지 물없이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했다.
올해도 여전히 큰산개구리와 도롱뇽들이 시멘트수로에 알을 낳았다. 그러나 비가 오면 쓸려내려갈 것이고 산다해도 스스로 수로밖으로 탈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차선책으로 작은 연못을 만들어 주기는 했지만 큰산개구리와 도롱뇽에게는 외면당하고 있다.
수로가 바뀌기 전에는 행정에 요청해서 보호해 달라는 푯말도 설치했었다. 부서가 다르다는 이유로 아무런 협의없이 서식처를 무차별하게 덮어 버리는 것은 생태적감수성의 바닥을 드러내는 사례가 아닐까. 아니면 우리가 보냈던 보호의 방식과 전달이 너무 모자랐던 것일까.
반성과 원망이 교차하는 중이다. 더 치열하게 지켰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늘 공존을 이야기 한다. 정비사업에서도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래서 내린 결론은 현재 인식으로는 공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간과 비인간의 구역은 따로 있음을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서로 친해질 수 있다는 착각은 버려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