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입선] 한없이 이기적인 내가 환경보호에 진심이 되기까지 (장유정) 제 2회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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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illden / 작성일2023-05-23본문
“세상이 나에게 해 준 것도 없는데, 내가 왜 세상을 배려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A양은 플라스틱 빨대 대신 제공받은 종이 빨대로 음료를 휘휘 저으며 세상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물에 젖으면 금방 흐물거리는 종이 빨대는 커피 맛을 망치고, 이는 인간에게 너무 큰 불편함을 준다 했다. 인류의 후퇴라고도 덧붙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우리에게 뭐 하나 해준 거 없는 지구를 위한 것임이 화가 나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A양의 말을 들으며 일순간 웃음이 날 뻔 했다. 그녀가 매일 아침마다 챙겨먹는 영양제 8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A양은 겁이 많아 자기 몸을 금쪽같이 여겼다. 매일 8알의 영양제를 챙겨먹으며, 몸 어딘가가 고장났을까봐 복부 이곳저곳을 찔러보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 몸을 아끼고 오래 살려 노력하는 그녀가, 자신이 평생 밟고 살아야 하는 이 세상을 가꾸는 일엔 이토록 회의적이라니, 너무 모순되어 웃기기까지 했다.
나는 그녀의 불만 토로가 지겨워져 내 앞에 놓여있던 텀블러를 관찰했다. 꽤 오래된 텀블러였는데, 더 이상은 해당 디자인이 나오지 않아 소중하게 다루는 초록색 텀블러였다. 오늘 가지고 온 초록색 우산과도 잘 어울려 괜히 들떴다. 무릎에는 도트무늬 천 가방이 놓여있었고, 케이크를 포장하기 위해 챙겨 온 다회용기 때문에 가방 한 쪽이 볼록했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 모든 걸 바리바리 챙기고 다녔던가? 언제부터 일회용기에 거부감을 느꼈던가? 눈앞에 당연하게 자리 잡았던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낯설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왕이면 환경에 좋다는 걸 했지만 ‘오로지 환경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 한 적은 없었다. A양의 발언을 비웃었지만 나 역시도 오로지 나를 위해 이기적인 마음으로 움직였을 뿐이었다.
나의 몸을 더 잘 가꾸고 싶다는 마음에서 유기농 식재료를 사고, 채식을 시작했다. 그저 예쁜 텀블러를 책상에 두고 싶다는 욕망, 반찬가게에 귀여운 다회용기를 가져가는 나의 모습에 자아도취적으로, 가방에 이것저것 챙기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나는 오로지 나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나를 더 돋보이게 하고, 아름답게 하기 위해 포장용기를 피하고 채식을 시작했다. 그렇게 살다보니 자연스레 책임감과 죄책감도 조금 덧붙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것에 즐거움과 만족감을 느꼈다. 나 자신을 가꾸는 과정은 그 어떤 것보다 만족감이 컸다.
나는 A양의 이야기를 무시할까 하다가, 그녀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싶었다. 어쩌면 이것이 네가 추구하는 삶과 맞닿아 있을지 모른다고. 나는 과거의 나 자신을 혐오하던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렇게 나 자신을 가꾸게 된 계기를, 그 속에 자연스레 이 모든 게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귀여운 텀블러에 담으면 예쁘기도 하고 얼음도 오래가니 앞으론 챙겨오라 말했다. 오래 살고 싶으면 네가 사는 세상이 온전히 버텨야 되지 않겠냐고, 화학물질인 빨대는 안 써야 하는 거 아니냐고도 덧붙였다. 이후 그녀는 입을 삐죽였지만 커피숍에서 나가기 전 텀블러 코너를 한 번 쓱 둘러본다.
나는 인간이 이기적이라 믿는다. 이기적이어서 이타적이기도 하다 생각한다. 세상을 더 좋게 한다거나, 환경을 보존한다거나 하는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나를 배제한 채 성립되지 않았다. 아침마다 자연스럽게 챙기는 텀블러와 혹시 몰라 챙기는 다회용기는 남을 위한 게 아니라 다 나를 위한 것이었다. 내가 이 세상에 속해 있기에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내 모습이 나는 무척 마음에 들기에, 당신에게도 이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