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장려상] 쓰레기를 캐내는 지구여행가족 (이혜진) 제 2회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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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illden / 작성일2023-05-23본문
우리 가족은 초등학교 5학년 딸, 3학년 아들, 한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사는 다섯 식구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 아이들이 커서 살아갈 세상을 생각하니 자연스레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일단 쓰레기 생산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살아가면서 발생되는 쓰레기를 보면 줄이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나마 늘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장바구니 늘 준비하기, 개인 물병 갖고 다니기, 빨대 사용하지 않기 정도인 것 같네요. 그래서 좀 더 적극적인 노력은 뭐가 있을까 생각하던 차에 알게 된 것이 ‘플로깅’입니다.
주말이나 공휴일에 시간을 내어 아이들과 플로깅을 나갑니다. (고양이는 집을 지킵니다.) 긴 집게와 생분해 비닐봉투, 손소독제 등이 준비물이지요. 코스는 집에서 출발해서 아이들 학교를 지나 학원가 일대를 왕복하는 편인데, 버스정류장이나 횡단보도 한쪽 구석 등에 쓰레기들이 많이 발견됩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쓰레기는 아직도 담배꽁초입니다. 배수로 덮개 구멍 사이사이에 낀 꽁초를 아이들은 보물 캐내듯 캐냅니다. ‘왜 이런 곳에 숨겨서 버리냐‘며 화를 내기도 합니다. 학교를 둘러싼 담벼락에는 물 빠짐을 위한 구멍들이 나 있습니다. 그 속에도 보물이 가득합니다. 특히 음료수 캔. 사이즈도 딱 알맞게 들어갑니다. 아이들은 또 화를 냅니다.
“대체 왜 이렇게 숨겨놓는 거야!”
쓰레기통이 아닌 곳에 쓰레기를 버린다는 것이 스스로 부끄러우니 숨기는가보다. 라고 대답해주지만 사실은 부끄러운지 안다면 그곳에 버리지 않았겠지요. 부끄러움은 그것들을 찾아 캐내는 우리들의 몫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걷고 달리며 즐겁게 쓰레기를 줍습니다. 큰 쓰레기를 찾아내면 서로 먼저 줍겠다고 경쟁도 합니다. 봉투가 불룩해질수록 더 힘을 내 봅니다.
한 시간 이상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주로 어르신들은 아이들에게 칭찬과 미소를 건네며 지치지 않도록 힘을 보테 주십니다. 또래 엄마들은 우리도 해보자며 자신의 아이들에게 이야기합니다. 가끔 ‘이런걸‘ 왜 하는지 물으며 이상한 눈빛을 보내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저 웃지요. 아이들은 플로깅을 하면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 보내주는 칭찬과 고맙다는 인사, 그리고 집에 돌아올 때 하나씩 입에 물고 오는 아이스크림이면 만족입니다. 때문에 또 가자고 하는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큽니다. 아이들 없이 저 혼자라면 사실 용기내기 쉽지 않았을 테니까요.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는 단체티셔츠를 맞춰 입고 입주민들이 다 함께 플로깅을 하기도 하고 캠페인을 벌여 사람들을 모집하여 단체 플로깅에 나서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가족은 그저 아이들 친구들과 함께 플로깅을 나간다든지, 지역 커뮤니티에 후기를 올리며 함께 하자고 독려하는 정도의 영향력일 뿐입니다. 하지만 적은 수의 사람들이라도 ‘하면 좋다’라는 생각을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유한한 삶을 갖고 이 지구에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그 누구나 똑같이 적용되는 공평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나의 유한한 삶이 끝날 때 지구의 남은 수명은 얼마나 될까요? 내 후손과 그들의 후손에게 남겨진 지구의 수명 말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잠깐 머무는 지구에서 쓰레기를 캐내는 이유가 스스로를 위해서가 아니길 바랍니다.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 훗날을 위해, 내가 아닌 너를 위해서 이렇게 쓰레기를 열심히 캐내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것이 여행하듯 머무는 지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믿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