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대상] 시계방 주인의 퇴장 (김상문) 제 2회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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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illden / 작성일2023-05-23본문
몇 년 전에 우리 마을 건너편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이사 차들이 부지런히 드나들수록 새로운 주거지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물건들이 죄다 내버려졌다. 애면글면 모아서 산 침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자개 농짝, 철 지난 옷, 어린이용 장난감 ,각종 주방제품 들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파트주변을 걷다가 한쪽 구석에 놓인 동그란 시계가 먼지를 둘러쓰고 있었다. 걸어두어도 좋을 것 같아 들고 나왔다.
고장 난 시계를 치는 시계방을 둘러보아도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농촌마을 입구에 허름한 간판에 “도장, 열쇠, 학용품도 겸하여 판다는 시계방이 보였다. 주인을 불렀지만 한참 만에 어슬렁거리며 뒷짐 지고 나타났다. 주인은 며칠 굶은 사람처럼 몰골이 핼쑥한 노인이었다. 시계방 주인은 ”무슨 일로 찾았나?“ 하는 어정쩡한 표정을 지었다. 장사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다.
주인은 전후를 살필 겨를도 없이 “주워 왔구만요.” 말했다. 나는 깜짝 놀라 “어떻게 아세요.”하고 나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는 심드렁한 말소리로 “요즘 시계를 들고 오는 사람들이 가끔 있어서요.” 주운 물건이나 들고 다니는 나이 값도 못하는 늙은이로 본 것이다. 그는 나를 향해 “헌집을 수리하면 그게 새집이요 헌집이요.”하고 오히려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그 말을 하는 의도는 다분히 나의 생활태도를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 같았다. “헌집이라도 수리하면 새 집이지요.” 하고 말했더니 나를 쳐다보면서 비로소 웃는 표정으로 “그래요 수리하면 새 집이지요.”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헌집을 수리해도 헌집이라고 해요.” “아마 그게 세대 차이가 아닌 가”합니다. 하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시계방 주인은 “요즘 세상은 다 일회용이오, 만들 때부터 그렇게 만듭니다.”하면서 “세상이 다 변화하는데 나만 지키고 살순 없지요”하였다. 그는 비장한 말투로 “ 삼십 년 동안 지탱해 온 시계방을 때려 치워야 할 때가 온 것 같소,”가느다란 목소리가 떨렸다. 삼십년의 직업전선에서 살다보니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긴 것이다. 그의 거슬릴 수 없는 세태의 변화를 느끼면서 그만 애지중지하는 시계방 처분에 대한 심란한 마음을 공감하면서 나는 시계방을 나왔다. 자기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툭툭 치고 배터리를 넣자 재깍 재깍 소리를 내며 잘 돌아갔다. 나는 새 시계를 얻은 기쁨보다 시계방주인의 어두운 표정에 영 마음이 걸렸다. 배터리만 갈아 끼우면 쓸 것을 왜 버려…
…내 어렸을 적 어머니는 손끝이 여물어 못 쓰는 물건이라도 결코 버리지 않았다. 검정 고무신이 닿아서 구멍이 나면 사주는 대신 신기료장수를 찾아가 고무신을 때워 신었다. 그리고 몇 번의 고무신을 땜질하고 나서야 새 신발을 사 주었다. 연필도 닿으면 연필심을 댓조각으로 묶어 지금은 볼 수 없는 몽당연필로 만들어 썼다. 어머니는 누나들이 입던 옷도 다시 고쳐서 입히고 헤진 옷은 뒤집어 새 옷처럼 만들었다. 절약이 몸에 배인 어머니에게는 버릴 것이 거의 없었다. 이처럼 우리의 선인들은 물건을 가기고 재활용함으로써 지구의 한정된 자원을 아낄 줄 알았다.
사실 풍족한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사람들은 시계를 고치려는 사람보다 버리고 새로 사려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는 것 같다. 고치는 값이나 새로 사는 값이나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어쩐지 마음이 편치 않다. 경제적인 이유로만 따지면 당연히 사는 것이 좋을 수 있지만 한정된 지구자원을 생각하면 무작정 소비만 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라고 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소비보다 절제하는 생활이 윤리정신이니까 ...
시계방주인은 거창하게 탄소중립을 외치는 환경논자는 아니다. 우리 조상의 내핍정신이 스러져가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생활인이다. 오늘 마지막으로 시계를 고치는 시계방 주인의 퇴장은 우리조상의 검소한 생활, 자연을 소중히 하는 생활정신도 단절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지구를 살리자”는 프랑 카드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