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장려] 우리 지치지 말고 묵묵히 가자.(장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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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illden / 작성일2022-03-21본문
일일이 감각하고 의식하는 단계에서 습관이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내 친구 Y군은 커피를 주문할 때마다 “아, 텀블러 까먹었다!”를 외치곤 했다. 그는 기후 변화 기사를 보며 혀를 끌끌 찼지만 자주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걷는 걸 혐오했으며, 걸어서 2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도 택시를 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Y군은 어느새 제로 웨이스트 카페에 가기 위해 집에서 텀블러와 락앤락 통을 챙겨 나가는 사람이 되었다. 버스 대신 따릉이를 이용하며 햄버거는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으로 거듭났다. 나는 지금부터 이러한 Y군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몇 년 전 신문에서 제로웨이스트 카페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그곳은 빨대와 냅킨을 일절 제공하지 않았고, 테이크아웃을 원하면 집에서 따로 다회용 용기를 챙겨 가야하는 곳이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음료와 케이크가 먹음직스러웠다. 나는 곧장 Y군에게 해당 카페에 가자고 전화했다. 먹을 게 인생의 가장 큰 낙인 Y군은 그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 날 Y군과 나는 카페에서 조금 떨어진 창경궁에서 만났다. 밤의 창경궁을 구경한 후 카페에 가기로 계획했다. 창경궁은 예뻤고, 밤공기도 좋았다. 산책으로 꺼진 배를 카페에서 채우기만 하면 완벽했다. 하지만 창경궁에서 카페까지 걸어서 50분, 차로 15분이 걸렸다. Y군은 택시나 버스를 타자고 했지만 나는 퇴근시간인 게 마음에 걸렸다. 도로 한 가운데서 기름과 시간, 돈을 줄줄 흘려보낼 게 뻔했다. 따라서 우린 따릉이를 탔다. 걷는 걸 혐오하던 Y군도 퇴근시간의 택시와 버스만큼은 두려워 했다.
부랴부랴 앱을 설치하고 안장에 올라탄 그는 생각보다 자전거를 잘 탔다. 혼자 이리저리 방향을 꺾으며 즐거워했다. 사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내내 자전거를 타고 등교할 만큼 자전거를 즐겨 탔다 했다. 하지만 등굣길에 사고가 난 이후 엄마 눈치가 보여 더 이상 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고. 그는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니 너무 재미있다며, 엄마 몰래 타는 자전거는 더 ‘꿀잼’이라 외치곤 깔깔거리며 바람을 갈랐다.
우린 30분 후 카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늑한 분위기의 카페 2층에 자리 잡았다. 곧 우리 앞에 녹차 크림을 얹은 아인슈페너와 아메리카노, 예쁘게 담긴 무화과 케이크와 가지런히 놓인 식기류가 내어졌다. 냅킨과 빨대는 일절 없었다.
Y군은 사진을 여러 장 찍고 한 입 맛을 보더니 요거트와 무화과의 환상적인 조화라며 돌고래처럼 박수를 치고 몸을 흔들었다. 그러다 그는 음료를 손에 살짝 흘리고 말았다. 그는 잠시 냅킨을 찾았으나 제로웨이스트 카페라는 걸 인지하고는 곧장 화장실로 가 손을 씻었다.
그리고 그는 화장실에 다녀온 후 뭔가를 깨달은 듯 “정말 단순하다.” 고 말했다. 그는 귀찮고 복잡하다고 느꼈던 과정들이 직접 해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음료를 흘리면 굳이 휴지를 사용할 필요 없이 흐르는 물에 잠깐 씻고 오면 되는 거였다고. 쓰레기를 하나 더 만들어낼 필요가 없었다고. 여긴 맛도 좋고 의미도 좋은 게 딱 자기 스타일이라고 칭찬을 넘어 끊임없이 호들갑을 떨었다.
Y군은 해당 카페에 진심으로 감격한 나머지 달마다 적어도 두 번은 그곳을 찾았다. 포장을 위해 락앤락 통과 텀블러 역시 챙겼다. 그리고 그곳에 갈 땐 엄마 몰래 탈 수 있는 따릉이의 기회 또한 놓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이런 변화는 그로 하여금 햄버거를 끊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따릉이를 이용한 후 점점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Y군은 살 빠진 자신의 모습에 만족을 느끼며 살을 더 빼야겠다고 다짐했다. 따라서 그는 햄버거를 완전히 끊고 비건 빵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일일이 감각하고 의식하는 단계에서 습관이 되기까지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나는 그저 묵묵하면 된다고 확신한다. 강요할 필요도, 대변할 필요도 없다. 어떤 사람은 친환경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예민하게 군다며 비아냥대기도 한다. 하지만 묵묵히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 덕에 Y군은 결국 좋은 세상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데 동참하기 시작했다. 인지의 단계부터 습관이 되기까지 우리들은 그저 묵묵하면 된다. 묵묵히 내 신념을 관철하면 된다.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우리 지치지 말고 그저 묵묵히 가자. 좋은 사람은, 좋은 습관은, 좋은 행동은 언제나 승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