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선] 컵라면을 먹을 용기 (김현지) > 지구생활수기공모(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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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입선] 컵라면을 먹을 용기 (김현지) 제3회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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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illden / 작성일2024-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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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홉 살 아들은 컵라면을 좋아한다. 끓여 먹는 라면도 먹여 봤지만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며 언제나 컵라면만을 고집한다. 그런데 어느 날, 그렇게나 완고하게 컵라면만을 사수하던 녀석의 생각에 균열이 생기는 일이 일어났다. 


컵라면과 더불어 아들의 둘째가라면 서러운 관심사는 바로 자연과 생물이다. 그래서 평소에도 그와 관련해 많은 대화들을 나누곤 하는데, 그날은 컵라면을 먹으며 지구를 오염시키는 각종 일회용품 쓰레기들과 그의 재활용을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얼마 전 광명에 있는 업사이클링센터에 다녀온 후로 부쩍 폐자원의 활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우리는, 그날 방문 이후 생각하게 된 우리나라 자원 재활용 시스템의 비현실적이고도 비효율적인 문제점들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한창 열을 올리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야기 도중 아들이, 자신이 먹는 컵라면 용기는 재활용함에 잘 넣고 있냐며 나에게 확인차 묻는 것이었다. 나는 답했다. 


"네가 먹은 컵라면 용기는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져. 뻘건 라면 국물이 밴 스티로폼을 어떻게 재활용할 수 있겠어? 그동안 그게 재활용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녀석은 내 말에 퍽이나 놀란 듯했다. 식사 후 직접 식탁 정리를 하지 않았으니 몰랐겠지만 그것이 사실이라고 난 다시 한번 쐐기를 박았다. 그러자 아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울상이 되더니 앞으로 다시는 컵라면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로선,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컵라면이 어떤 존재인가? 가뜩이나 입이 짧아 또래집단에서 늘 작은 축에 속하는 아들 녀석이 그나마 좋아하는 손에 꼽는 몇 가지 음식들 중에서도 토너먼트식 대결을 하면 언제나 1위를 차지하는, 단 한 번도 그 영광을 다른 음식에게 빼앗겨 본 적 없는 그런 음식, 아니 존재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먹은 컵라면 용기가 재활용되지 못해 쓰레기로 버려지고 그 결과 환경이 오염돼 자신이 좋아하는 자연과 생물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눈 딱 감고 계속 컵라면을 즐길 용기가 녀석에겐 도저히 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단칼에 컵라면을 끊겠다고 하는 데엔 정말이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몸에 좋을 것 없는 컵라면이다. 끊겠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게 오히려 맞는 일이건만, 이상하게도 엄마인 내 마음은 어딘가 못내 서운했다. 일주일에 딱 한번, 금요일 저녁 식사로 약속된 컵라면 덕에 일상에서 느껴왔을 아들의 그 작은 설렘, 기대, 기쁨마저 빼앗은 것 같아 미안하고 괜히 말했나 하는 후회마저 들었다.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잠시 뒤 '컵라면을 컵에만 먹지 않으면 될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에게 컵라면 용기를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마다할 녀석이 아니었다. 얼굴이 다시 환해지며 아들은 나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그렇게 아들의 컵라면은 그날 이후 컵라면이 아닌 대접라면이 되었다. 포장을 뜯어 면은 대접으로 옮겨 담아 컵라면을 먹는 방식 그대로 익혀 먹었고, 용기는 깨끗한 새것 그대로를 분리배출 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용기 배출에 대한 문제를 해결한 후 아들은 여전히 매주 금요일 저녁으로 컵라면을 즐기고 있다. 


그리고 오염된 용기를 그냥 종량제봉투에 버릴 땐 몰랐던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다. 바로 컵라면 용기는 스티로폼이 아니라 플라스틱이라는 것이다. 용기를 살펴볼 일이 없었던 과거엔 당연히 스티로폼이라 생각했었는데, 재활용함에 넣으려고 샅샅이 살피다 보니 용기 밑바닥에 버젓이 플라스틱 재활용품이란 표시가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바로 우릴 두고 하는 소리라며, 아들과 난 마주 보며 실소를 터트렸다. 


덧붙여 위에서 언급한 우리나라 재활용 시스템에 대한 생각을 조금 이야기해 보자면, 우선 업사이클링센터에서 본 물건들은 대부분 액자나, 조형물 등의 예술품이었다. 예술품은 있으면 좋긴 하지만 실생활에 꼭 필요한 실용품은 아니라는 점에서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폐자원 활용의 가치는, 재사용이나 재활용을 통해 새 상품을 덜 생산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결국 자원을 덜 사용하게 되는 효과를 가져올 때 발휘되는 것 아닐까? 그런 면에서 예술품으로의 업사이클링은 자원 절약의 효과가 미미할 것 같다.


또, 현재 우리나라에서 분리수거되는 자원의 종류는 플라스틱, 종이, 유리, 캔 정도 뿐인데 이를 더 세분화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를 들어, 따로 분류된다면 재활용이 매우 유용할 택배 박스나 멸균팩, 투명 플라스틱 과일,채소 용기 그리고 작지만 빈번하게 사용하는 휴지심, 캡슐커피용기, 페트병뚜껑, 빨대 등을 따로 수거한다면 다른 쓰레기들과 휩쓸려 버려지는 대신 요기 나게 재활용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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