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입선] 화려하지 않은 배움 (김미영) 제 3회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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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illden / 작성일2024-05-22본문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장애어린이집 교사인 나. 아이를 대하는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나는 아이들에게 배움을 주기도 하지만 아이를 통해서 배움의 기회를 갖는다. 2023년 8월은 그런 의미에서 기후 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아주 제대로 느낀 시간이었다. 어린이집에 찾아온 탄소중립 실천교육. 양손가득 한눈에도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들고 교실로 들어오신 강사님은 약 40여 분간 탄소중립 실천교육을 해주셨다. 짧은 교육이었지만 교사인 나부터 달라져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날부터 어린이집 교실의 환경구성부터 수업 방식, 놀이지원에 탄소중립 실천을 하기 위한 여러 고민이 시작되었다. 인위적인 교실 환경 구성은 지양하고 교실 내에서 흔히 사용되던 물티슈 사용은 극소량으로 줄이기로 한다. 여러 자료와 다큐멘터리를 찾아본 결과 재활용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있는 물건을 오래 쓰고, 여러 번 사용하는 것이 분리수거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흔하게 나오는 비닐도 미술 재료로, 박스 뒷면은 색다른 스케치 도구로, 선물 포장 등은 일체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한번 원칙을 정하자 가장 먼저 변해야 할 것은 교사의 태도였다. 쉽게 뽑아 쓰던 물티슈로 가는 손길을 행주나 다회용 걸레로 바꿔야 했고, 수업 방식도 바꿔야 했다.
수업 방식을 바꾸는 것은 즉 여러 생활 속 재료를 수업 교구로 바꾸는 것과 같다. 해 지난 달력 뒷장은 책을 읽은 후 아이들과 독후 활동을 하는 독후 활동 재료가 되었다. 모자이크 수업을 할 때는 색종이 대신 버려진 잡지를 주워와 다양한 색을 활용한 모자이크 작품을 만들었다. 버려진 실뭉치는 꿈틀꿈틀 뱀이 되기도 했고, 자연물 기르기 수업을 할 때는 페트병으로 만든 화분을 활용했다. 가을 색깔 수업을 하는 날은 계절의 변화를 인공적인 색지가 아니라 어린이집 주변의 자연물로 직접 매칭 해보도록 했다. 또한 날짜 수업이나 숫자 개념 익히기 수업 때는 달력에 있는 숫자를 활용하여 수업을 진행했다. 화려하지 않지만 생활 속 재료가 배움의 가치를 더하니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닌 훌륭한 도구가 되었다. 또한 작아진 옷이나 신발 등을 가정에서 기부 받아 필요한 가정에 나눔을 하였다. 이제는 쓸 만한 육아용품을 자연스럽게 어린이집으로 보내주시는 어머님도 있다. 아이들에게 쓰레기 버리지 말라고 하는 말 한마디 보다, 직접 생활 속에서 교사가 보여주는 이런 활동이 자연스럽게 환경 실천 교육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어떤 기사를 보니 레고 회사에서는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브릭을 만드는 친환경 블록 사업을 포기하기로 했다고 한다. 제조 공정에서 더 오염이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한다. 특별한 생활의 변화가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물건들을 오래쓰며 무분별한 소비를 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가장 빠른 탄소중립 실천방법일지 모른다.
대기업의 거대한 프로젝트도 아니고, 환경 단체의 멋진 실천도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2023년은 삶의 방식을 통째로 바꾸는 과정을 통한 나만의 기후위기 대응의 해였다. 무심코 버려지는 음료수 병도 교구를 바꾸는 전국의 많은 영유아교사들, 몇 십 년 된 인테리어를 바꾸지 않고 고집하는 어르신들, 플라스틱 죽통 하나도 수납용품으로 쓰는 주부들. 어쩌면 시민 하나하나가 나름의 방식으로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나 역시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이자 교사로 기후위기에 매일매일 대응 중이다. 특히 장애어린이집의 특성상 아동의 놀이는 교사의 역량에 따라 좌우된다는 점에서 어린이집 교사로 화려하지 않지만 생활 속 배움을 실천하기 위해서 매일 노력중이다. 모든 것을 쉽게 가지는 환경 속에서 물건을 가치 있게 쓰는 경험을 함께 하는 우리 해누리반. 나는 매일 아이들과 화려하지 않지만 자연스러운 배움을 실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