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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장려상] 음양파괴 (정석대) 제3회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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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illden / 작성일202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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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요란한 매미 울음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난데없이 매미 한 마리가 아파트 창틀 방충망에 붙어서 아랫배를 씰룩거리며 바로 귓전에서 앵앵 울어댄다. 이런 밤낮도 구별 못 하는 멍청한 놈이 어디 있나? 밤톨만한 미물 주제에 감히 신성불가침의 영역을 침범하다니, 화가 벌컥 올라왔다. 달콤한 단잠을 깨워버린 매미에게 복수하듯 머리맡에 있는 휴지 뭉치를 냅다 집어 던졌다. 가뜩이나 공원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소음에 날카로워져 있던 나의 신경질적인 반응이었다.


놓쳐 버린 잠을 청하려 뒤척거리다 가만히 되짚어보니 매미만 미워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미가 우는 것은 지극히 자연적이 아닌가? 나의 입장에서 보면 소음에 불과하지만, 매미의 입장은 암컷을 부르는 수컷의 성스러운 사랑의 세라나테다. 그것도 7년간이나 암흑의 땅속에서 산고의 고통을 인내한 후에 주어진 보름의 시간 동안 짝을 찾아야 하는 절박하고 애절한 외침이다. 그렇게 본능적으로 울던 매미에게 버럭 화를 냈던 나 자신이 너무 옹졸하지 않았는지 슬며시 미안함이 밀려왔다.

 

어렸을 적 내 고향에서는 해진 뒤에는 매미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낮에 그렇게 울어대던 매미는 해 떨어지면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울음을 멈추었다. 요즘에는 훤히 밝혀 놓은 가로등 때문에 밤낮을 혼동하고 울어댄다. 지극히 본능적인 행위를 하는 시간의 길을 잃게 만들어 버린 것이 인간이 아닌가? 내 생애의 수만일 중에 단 하루의 단잠을 깨웠다는 이유로 모질게도 신경질을 부렸던 것이 미안해졌다.

 

지난 휴가철에 자연휴양림에 묵은 적이 있었는데 숲속 오두막에 말벌 한 마리가 날아 들어와 소란을 겪은 적이 있었다. 놀란 말벌이 윙윙거리며 유리창에 머리를 처박고 탈출구를 찾아대고 겁먹은 나도 에프킬라를 들고 마치 원수를 응징하듯 소동을 벌였다.


엄밀히 따져보면 말벌도 죄가 없다. 경계를 침입하여 숲의 질서를 파괴한 이것 역시 사람이 아닌가?  운전을 하다보면 도로위에 로드킬을 당한 야생 짐승들의 사체를 흔하게 목격할 수 있다. 야행성 동물의 눈에 수천 럭스의 해드라이트를 들이대어 우왕좌왕하는 동물을 치여 놓고 그것도 모자라 연달아 바퀴로 짓이겨버리는 것도 인간의 소행이다. 산을 잘라내어 도로를 만들었으니 길을 잃은 동물들이 도로로 나올 수밖에 더 있겠는가? 어디 이뿐이랴! 계란 생산량을 더 높이기 위해 양계장에 한밤에도 대낮처럼 전깃불을 밝혀 놓는다고 한다. 꽃들의 개화를 인위적으로 늦추어 출하 시기를 조절하기 위해서도 조명을 밝혀 놓는다. 뉴스에서 수십억 마리의 꿀벌들이 사라졌다는 보도를 심심찮게 접하다 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무감각해졌다. 꽃 축제에서 밝히는 수많은 야간조명과 레이저 조명들이 꿀벌을 떼죽음으로 몰아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꿀벌이 사라지면 모든 식물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이러다가 어떤 끔찍한 재앙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올지 모른다.


우리 고장에 있는 수변공원에 생태탐방로라고 이름을 붙이고 습지 위에 목조다리를 만들고 훤하게 조명을 밝혀 놓았다. 그 생태탐방로가 생기고부터 철마다 날아오던 청둥오리를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생태를 파괴하는 생태탐방로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암울한 시대에 자행되었던 고문 중에 잠을 못 자게 하는 것이 가장 큰 고문이라고 한다. 난개발만이 환경파괴가 아니다. 자연의 섭리를 거역한 음양 파괴도 엄청난 환경훼손이다. 인간은 은근히 그 두려움을 알면서도 무감각해져 버리는 미필적 고의로 세상의 질서를 파괴하는 데 열심이다.


밤낮을 혼동하여 울어대던 매미 한 마리를 죽일 듯이 휴지 뭉치를 내 던진 나의 소행 또한 자연의 섭리를 존중할 줄 모르고 부리는 만용이 아닐까? 한밤중에 찾아와 울어대는 그 소리가 자연을 더 이상 건드리지 말라는 항의의 표시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상상할 수 없는 대가를 치를 것 이라는 무서운 경고음은 아닐까? 생각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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