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려상] 절반쯤의 채식과 제로 웨이스트 (김지원) > 지구생활수기공모(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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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장려상] 절반쯤의 채식과 제로 웨이스트 (김지원) 제3회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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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illden / 작성일202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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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구를 위한 생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첫 자취를 시작한 2020년의 일이다. 10대 때부터 동물과 환경에 관심이 많았지만, ‘기후 위기’나 ‘환경 오염’, ‘동물권’ 같은 단어들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는 데다가 신경 쓸 게 많을 것 같다는 막연한 예측으로 지구를 생각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처음으로 혼자 살림을 꾸려나가다 보니 매주 나오는 쓰레기의 양이라던가 방에 베이는 고기 냄새, 고기를 손질할 때 느껴지는 생명의 감촉을 무시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렇게 나는 자연스럽게, 뚜렷한 계기나 목적 없이 채식과 제로 웨이스트를 시작하게 되었고 지금은 5년째 ‘절반쯤’ 이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이 생활이 절반이 된 건 꾸준히 나에게 맞는 방식과 정도를 알아나가고 찾다 보니 시작 지점으로부터 딱 절반 정도의, 지구와 나를 위한 친환경적 생활 방식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맨 처음 채식을 시작했을 때 나는 비건(vegan)이었다. 갑자기 고기, 생선, 달걀, 우유, 치즈, 케이크 등등 많은 음식을 끊으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일단 뭘 먹어야 할지 몰라 집 근처 마트에서 쌈 채소와 과일, 고구마 등으로 끼니를 때우다가 조금씩 나만의 레시피를 찾아 나갔다. 특히 유튜브와 블로그 등을 통해 정보를 얻어 이런저런 요리를 시도하게 되었다. 그러나 친구들과의 약속이나 단체 생활을 할 때는 곤란이 순간이 잦았다. 어쩌다 회식이라도 하게 되면 혼자서 맨밥에 반찬만 먹어야 할 때도 있었고, 친구와 여행 중에는 아예 굶은 적도 있다. 한편으로는 나를 보더니 일주일에 한 번 채식을 따라 시작한 친구도 생겼고, 우리 가족도 자연스레 채식 식당에서 외식하는 일이 많아지는 긍정적인 효과도 생겼다.


그리고 몇 년에 걸쳐 나는 나만의 채식법을 찾아냈다. 내가 좋아하는 케이크나 치즈 같은 것은 종종 먹되, 내가 어떻게 생산된 무엇을 먹는지 자각하며 감사한 마음을 가진 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여행 중에나 친구들과의 약속에서도 고기만 들지 않으면 먹기도 하는데, 처음에는 채식 생활을 점점 내려놓는 게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만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걸 깨닫고는 이제 나의 식습관을 조금씩 만들어 나아가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또 제로 웨이스트 생활을 시작할 땐 아예 클렌징폼, 샴푸, 린스를 없애고 다용도 뷰티 바(비누) 하나로 샤워를 했다. 그리고 대나무 칫솔, 친환경 수세미 등을 썼다. 배달을 아예 시키지 않아도 보고 종이 포장된 화장품을 구매하기도 했다. 이 생활도 몇 년에 걸쳐 해오다 보니 나만의 방식을 찾아냈는데, 바뀐 것도 있고 더 나아진 것도 있고 포기한 것도 있다.


먼저 배달을 아예 하지 않고 사는 건 현대 도시인에게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최대한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가까운 곳에는 용기를 들고 포장하러 가기도 한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어디선가 ‘용기 내!’라고 적힌 포스터를 보고 들고가 봤는데 용기를 들고 찾아오는 걸 반기는 사장님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리고 욕실 생활에서는 여러 비누를 전전하다 결국 다시 샴푸와 린스를 구매해 쓰고 있다. 마찬가지로 종이 포장지로 된 화장품을 구매했더니 여행 중 흐물흐물해져 결국 못 쓰고 버린 일이 있었다. 그래서 비건 뷰티 브랜드나 친환경 라인으로 나온 제품들, 재활용 병을 사용한 제품들을 구매하는 등 여러 옵션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또 내가 관리에 소홀하면 곰팡이가 생기는 대나무 칫솔 대신 재사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칫솔을 쓰기 시작했다. 좀 더 나아진 부분도 있다. 주방에서는 주방 비누를 계속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 또한 여러 제품을 전전하다 내게 맞는 제품을 찾았다. 무엇보다 성분이 좋아서 과일과 야채를 씻을 때 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 외 사소한 습관도 몇 가지 생겼다. 어쩌다 생긴 비닐은 꼭 두 번 세 번 쓰고, 다이소나 편의점 같은 곳을 들를 땐 봉투를 들고 다닌다는 것이다. 또 패션에 관해서도 변화가 생겼다. 활동적인 걸 중시하고 옷을 편하게 입는 내게는 중고 의류가 더 빨리 낡아서 오히려 자주 교체하게 된다는 걸 깨닫고 돈을 모아서 질이 좋은 옷을 사 입거나 내가 자주 입을 수 있는 새 의류를 구매해 최대한 오래 입는 형태로 바뀌었다.


이렇듯 많은 변화가 생겼고 이런 생활도 조금씩 새로운 변화를 거치겠지만, 그래서 이게 누군가의 눈에는 규칙성이 없는 생활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스스로 ‘감성적인 소비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관없다. 다시 곱씹어봐도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나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그럴듯한 이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난 그저 동물인 돼지가 좋고, 오리가 좋고, 소가 좋고, 물고기가 좋기에 그들을 음식으로 먹지 못한다. 그리고 귀여운 거북이와 가오리가 사는 바다에 쓰레기가 없었으면 좋겠다. 이런 어린이 같은 이유로, 나는 계속 절반쯤의 지구 생활을 한다. 나처럼 얼렁뚱땅하게 채식과 제로 웨이스트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으니 더 많은 사람이 즐겁고 가뿐한 마음으로 이런 생활에 합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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