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려상] 냄비와 자라통 (김완수) > 지구생활수기공모(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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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장려상] 냄비와 자라통 (김완수) 제3회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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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illden / 작성일202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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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본디 마른 체형에 추위를 잘 타 겨울만 다가오면 늘 걱정부터 앞섰다. 그래서 다른 해에 비해 추위가 일찍 찾아오고, 또 오래갔던 올겨울엔 그야말로 추위와의 전쟁에 악전고투해야 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하필 지난가을 무렵부터 보일러 작동에 문제가 생겨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수리를 맡겼지만, 집 안의 온수 배관이 지나가는 곳 어디에서 누수가 생겼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 나와 어머니는 한겨울을 날 생각에 눈앞이 캄캄하기만 했다. 겨울이 코앞에 닥친 시점에 손 놓고 추위와 일전을 치를 결의만 다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방바닥을 다 뜯어 보자니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생각다 못해 마침 집에 있던 전기장판을 꺼내 쓰자고 어머니께 제안했으나 과다하게 소비될 전기도 전기려니와 장판에서 나오는 전자파도 몸에 좋을 것 없다는 어머니의 깐깐하신 반대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래도 다행히 단 두 식구였던 우리는 결국 전기난로를 쓰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난로 한 대를 집 안에 들여놓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애초 전기난로 한 대로 혹독한 겨울을 대비하려 했던 것이 무모해서였을까? 겨울이 채 찾아오기도 전인 지난 늦가을 무렵부터 집 안에선 공기가 바깥 기온보다 더 냉랭한 나머지 입김까지 만들어져 나와 어머니는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게 일상사가 돼 버렸다. 휑한 집 안에서 난로 한 대에 의지한 채 추위를 버텨 낸다는 것은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지난 연말 무렵의 어느 날 저녁 어머니는 나와의 대화 중에 우연히 당신이 어린 시절에 자주 쓰시던 자라통(유담포)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 존재를 예찬하시더니 무슨 좋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갔는지 냉큼 부엌으로 향해서는 곳곳을 뒤지기 시작하셨다. 그래서 내가 뒤따라가 무슨 일인지 여쭤보니 어머니는 냄비가 자라통의 기능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을 거라 장담하며 당신이 하시던 일에 열중하시는 게 아닌가.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어머니는 마침내 스테인리스 재질의 중형 냄비 두 개를 찾아내시고는 흐뭇한 웃음을 지으셨는데, “네 방과 안방에 하나씩 두면 되겠다.” 하며 바로 두 냄비 안에 물을 가득 채우시고는 익숙한 동작으로 가스레인지 위에 함께 올려 덥히셨다. 나는 처음에 “이게 보기엔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자기 전에 이부자리 안의 발치에 잘 놔두면 유담포처럼 다음 날 아침까지 제법 온기를 띠고 있을 거야. 이젠 한시름 놓을 수 있겠다.” 하고 말씀을 이으시는 어머니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날 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내가 어머니 말씀을 따라 열로 달궈지고 온수에 의해 그 열이 보존된 냄비를 발치에 두고서 그것을 두 다리 사이에 낀 채 자리에 누우니 처음엔 다소 거치적거리는 느낌에 잠을 이루기 불편했으나 차츰 온기가 발치 쪽에서 이부자리 전체로 퍼지더니 내 체온까지 훈훈하게 상승시켜 줬다. 어머니의 작지만 빛나는 삶의 지혜가 냉랭한 기운 속에서 따스한 꽃을 피우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어머니 덕에, 아니 냄비 덕에 나는 점점 기승을 부리는 추위를 용케 견뎌 낼 수 있었다. 그러다 금상첨화라고 해야 할지 설 연휴 후에 반가운 소식이 하나 날아들었다. 오래전에 출가해 서울에 살고 있던 여동생이 친정에서 잠깐 명절을 쇠는 동안 집 안 사정을 알고 난 뒤 예전에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는 매제의 출장 때문에 함께 일본에 갔다가 현지에서 선물용으로 구입한 자라통을 곧 택배로 보내 주겠다고 득달같이 전화했던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자라통이 뭐, 얼마나 대단한 물건이겠어?’ 하고 반신반의했으나 어머니는 그 전화 이후 들뜬 마음으로 택배가 하루빨리 도착하기만을 기다리셨다. 


  이윽고 곧 자라통 두 개가 무사히 집에 도착하자 어머니는 아연 재질의 자라통을 바라보며 연방 싱글벙글하시곤 안을 씻어 낸 자라통마다 물을 가득 채워 가스레인지 위에 나란히 올리셨다. 그런데 말로만 들어 알고 있었지 번데기처럼 볼품없이 생긴 물건이 여전히 믿음직스럽지 못했던 나는 그런 어머니의 행동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오산이었음을 깨닫게 되기까진 단 하루의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잠깐만 손을 얹고 있어도 데일 것처럼 후끈후끈 달아올라 있던 자라통을 동봉된 덮개 천 안에 넣은 채 발치에 고이 놔두고선 이전까지 자라통 역할을 톡톡히 해 오던 냄비는 시린 옆구리 쪽으로 옮겨 마치 죽부인을 끼듯 껴안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꽉 찬 이부자리처럼 마음도 든든해서였는지 곧 안락한 잠을 청할 수 있게 돼 ‘이게 바로 삶의 행복이구나!’ 하는 감탄으로 자라통의 녹록지 않은 효과를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떴어도 어머니 말씀처럼 온기를 보존하고 있는 이부자리 안에서 마냥 게으름을 피우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니 나는 보일러도 전기장판도, 그리고 난로도 대신해 주기 어려운 행복감을 ‘냄비’라는 어머니의 지혜와 ‘자라통’이라는 동생의 배려를 통해 신선하게 체득했던 셈이다.


  어머니는 효자 못지않은 냄비와 자라통의 효험을 보시다가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남들이 보면 근천스럽다고 흉볼지 몰라도 요즘 같은 불황일 때는 실속을 차리는 게 최고여! 아, 고유가, 고물가 시대에 전기세도 팍팍 오른 시댄디, 기름이나 전기 펑펑 써 가며 사는 것보다 요로코롬 효율적으로 겨울을 나는 게 지혜로운 경제생활 아니겄냐? 가스비는 더 나올지 몰라도 멀리 보면 이게 훨씬 더 절약하는 방법이랑께.”


  어느덧 겨울이 물러가 날이 풀린 요즘도 나와 어머니는 냄비와 자라통이 가져다주는 삶의 온기를 만끽하며 소소하지만 달리 비할 데 없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내가 예전 같으면 겨울철마다 연례 행사처럼 꼭 한 번씩 치렀을 감기도 한 번 걸려 보지 않고 올겨울과 작별을 고했다는 사실인데, 보일러를 가동해도 감기로 골골거렸던 때를 생각하면 나로서도 요 냄비와 자라통이 여간 예쁘고 대견한 게 아니다. 


  ‘춘래불사춘’이라는 말처럼 봄이 온다 하여도 으레 그랬듯 조만간 불청객 같은 꽃샘추위가 찾아와 사람을 며칠 움츠러들게 하리라. 그러나 요 냄비와 자라통이라는 든든한 친구들이 있기에 나는 꽃샘추위가 하나도 두렵지 않다. 그래서 요샌 부쩍 이런 다짐을 한다. 내 한겨울을 녹여 준 냄비와 자라통의 효자 노릇처럼 나 역시 어머니께 지금부터라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 보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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