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그리고 쓰담 산책을 (이준수) > 지구생활수기공모(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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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우수]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그리고 쓰담 산책을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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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illden / 작성일202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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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에 무언가 좋은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건 어른이 된 이후다. 무신론자인 나에게 성탄절은 어릴 적에는 선물을, 커서는 공휴일로서 휴식을 제공해 주었다. 올해는 마침 성탄절이 금요일에 자리 잡고 있어서 주 4일 근무에, 징검다리 휴가까지 누릴 수 있었다. 내가 살아있는 한 신앙의 유무와 상관없이 크리스마스라는 혜택은 계속될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받기만 하면 작은 무언가라도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 인지상정. 언젠가부터 성탄절에는 작더라도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해보자는 소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내 비록 교회는 안 나가도, 교회 앞마당 정도는 쓸어줄 수 있다는 느낌이랄까. 이번에는 쓰레기봉투를 들었다.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산책을 하는 김에 가다가 발견한 쓰레기를 주워 오자는 소박한 취지였다. 우리 집에는 10L, 20L 이렇게 두 종류의 쓰레기봉투가 있다. 처음에는 10L짜리를 뽑았다가 네 식구가 함께 사용하기에는 너무 빈약한 크기 같아서 20L로 바꿔 들었다. 잘 정비된 산책길인 만큼 쓰레기가 나와봤자 얼마 나오겠냐, 그래도 쓰레기봉투 용량이 간당간당한 것보다 여유가 있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하면서 안일한 생각을 품었다. 그러나 아파트에서 나와 거리로 들어서는 순간 후회하고 말았다.

"아빠 여기 쓰레기야!"

"담배꽁초!"

쓰레기 탐지 및 경보 역할을 맡은 두 딸내미의 새된 목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렸다. 다섯 걸음을 조용히 내딛기 힘든 지경이었다. 평소에는 몰랐다. 이 땅에 쓰레기가 얼마나 많은지. 작은 비닐 포장지부터 건설폐기물까지 사방천지에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산책로에 도달하기도 전에 미션이 끝날 것 같았다. 제 팔목만 한 철근을 집어 드는 아이를 겨우 달래 가며 전천 강변에 도착했다.

 
문명 세계를 가득 채우는 자동차와 건물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한결 스트레스가 누그러졌다. 환경미화원은 항상 이런 기분일까. 도시에 가면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쓰레기의 파도가 밀려오고, 사람이 드문 자연에 와서야 안식을 찾는 패턴. 우레탄이 깔린 산책로는 말끔했다. 운동하러 오는 사람이 딱히 길 위에서 별도의 행위를 하지는 않을 테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돌 징검다리에서 부근에서 실망스러운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갈대숲과 돌 받침이 만나는 지점에, 다시 말해 음습하고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땅에 쓰레기가 가득 모여 있었다. 여름이었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쓰레기다. 왜냐하면 강수량이 많은 시기에는 물이 흐르고 있으므로 바다로 흘러가 버리거나, 무거운 쓰레기는 수면 아래 숨어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탄절 무렵은 비가 적게 내리기도 하고, 다음 해 봄 가뭄을 대비해 상류의 달방댐에서 수문을 닫아버리므로 전천의 바닥이 드러난다.

 

우리는 우레탄 산책로를 벗어나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강바닥으로 내려갔다. 사분의 일쯤 분해되어 삭은 비닐봉지가 여기저기 박혀 있었다. 미세 플라스틱이 저런 식으로 바다를 향해 흘러갔을 것이다. 우리는 생수 페트병과 테이크 아웃 용기를 부지런히 담았다. 인근 논과 밭에서 나온 듯한 비료 포대도 여럿 눈에 띄었다. 강으로 내려간 지 10분도 되지 않아 20L 쓰레기봉투가 가득 찼다. 사람은 무서울 정도로 사회적인 동물이다. 공적인 공간인 산책로에서는 점잖을 빼는 사람들이, 외부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훌훌 쓰레기를 집어 던진다.

 

더 이상 쓰레기를 담을 수 없어 손에 쥔 채 강바닥을 빠져나왔다. 큰 아이가 과자 봉지를 발견하여 쓰레기봉투에 쑤셔 넣다가 딱딱한 비료 포장지를 눌렀는지 봉투가 죽 찢어졌다. 10cm 정도 되는 긴 상처처럼 보였다. 아내는 쓰레기봉투가 터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아기를 안듯이 들고 걸었다. 반면, 쓰레기 박멸에 재미를 들린 아이들은 끊임없이 어디선가에서 새로운 쓰레기를 모아 왔다. 결국 왜 쓰레기를 보고도 그냥 가냐는 핀잔을 들어가며 귀가했다.


크리스마스에 쓰레기를 줍는 이벤트는 꽤 즐겁지만, 즐거움에 비례하여 찝찝함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당신은 절대로 처음에 설정한 목표량보다 적은 양의 쓰레기를 주울 수 없다. 쓰레기봉투가 아무리 크더라도 당신은 끝끝내 그걸 예상보다 빠른 시간 안에 채울 수 있고 최종적으로는 다른 쓰레기를 내버려 두고 와야 한다. 그 찝찝함은 내가 지구에게 좋은 일을 했다는 자기 위안적 만족감을 능가한다. 인류가 존속하는 한 결코 이 쓰레기들을 다 치워버릴 수 없을 거라는 절망감. 그리고 그 쓰레기 생산자 중 한 명이 바로 나라는 사실이 크리스마스의 기쁨을 어둡게 장식한다. 일 년 내내 쓰레기를 만들기만 했으니, 하루쯤은 쓰레기를 주워도 좋을 것 같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내년 쓰담 산책(쓰레기 담고 오는 산책)에는 50L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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