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대상] 행운을 줍는 일 (백승집) 제3회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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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illden / 작성일2024-05-22본문
자주 가는 그 골목은 늘 쓰레기로 가득하다. 알 수 없는 악취가 코를 찌르고, CCTV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린다. 누구든 쓰레기를 쥐고 그 골목을 걷게 된다면 손에 바스락 거리는 무언가를 바닥에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고 말 것이다.
그 날은 아주 뜨거운 여름날이었다. 나는 어김없이 그 쓰레기로 가득한 골목을 걷고 있었다. 어릴 적 들리던 매미소리는 온데간데없고 오토바이의 큰 굉음만이 귀를 때려댔다. 환경오염 때문에 곤충 개체수가 줄었다는 데이브 굴슨의 책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문득 그런 현실에 한숨이 나왔다. 여름빛이 사라진 창백한 지구에 사는 듯하여.
당시 한 고등학생이 나를 앞서 걷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뚝뚝 흐르는 오렌지색 아이스크림이 쥐어져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오늘은 저걸 꼭 먹어야지!’ 하며 달달한 꿈을 꾸었다. 그러던 순간이었다.
그 학생은 다른 손에 쥐고 있던 아이스크림 비닐을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비닐을 바닥에 던졌다. “툭” 아이스크림 비닐이 쓰레기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는 소리였다. 당시 그 모습을 바라본 나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환경의식으로 가득했던 나는 예상과 달리 크게 분노하지 않았다. 당시 길거리의 상태가 너무나도 엉망이었기에 누구든 쓰레기를 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학생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여기진 않았다. 그저 그 학생 이외에도 이런 환경을 방치한 많은 이들의 책임이 엮인 일이라 생각했다. 이제껏 그 길을 지나며 방관한 내게도 책임이 있듯.
그렇게 나는 쓰레기를 향해 한 치 망설임 없이 다가갔다. 그리고 ‘쓰레기를 줍는 것은 행운을 줍는 일’이라는 인생의 철칙을 세기며 비닐을 집어 들었다. “바스락” 아, 줍는 소리가 그에게 닿고 말았을까? 걸어가던 학생은 놀라 뒤를 돌아봤고, 비닐을 줍고 있는 어정쩡한 자세의 나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어릴 적 다큐멘터리 작가를 꿈꾸던 한 소년은 교실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웠다. 그러자 누군가가 노려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착한척하는 거 되게 꼴 보기 싫어” 늘 옳은 행위라 믿어왔던 일로 누군가의 미움을 받은 나는 무척 당황했고, 또 두려움에 떨었다. 아직까지도 그 눈빛과 공포가 선명히 몸속에 남아있는 듯하다. 그 후 군대에서도, 또 사회에 나가서도 종종 떨어진 쓰레기를 주웠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유별나다고 했다. 그리고 아주 가끔 좋지 않는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존재했다. 이렇게 겁쟁이인 내게 쓰레기를 줍는 일은 점점 타인의 시선과 싸워야하는 힘든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고작 그 작은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학생과 눈이 마주친 나는 겁에 질렸다. 어릴 적 심어진 공포가 혈관을 타고 온 몸을 뛰어다니는 기분이었다. 나는 짧은 시간동안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행운을 줍고 있어요.”라는 농담을 해볼까, 혹은 뒤를 돌아 도망칠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순간 학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그는 머쓱한 웃음과 함께 짧은 사과의 말을 전했다. 그리곤 다가와 나의 손에 있던 쓰레기를 챙겨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나 역시 괜찮다는 말과 함께 그를 향해 웃어주었다. 그렇게 그 학생은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사과는 내게 무척이나 의미 있었다. 물론 그 사과의 객체는 내가 아닌 지구가 되어야 할 테지만. 그저 그가 조금이라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음에, 또 내 몸속 공포를 조금이라도 덜어주었음에 고마웠다. 어쩌면 이 유별나다고 여기는 나의 환경의식을 내가 가장 유별나게 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희망찬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는 점점 더 멀어져갔다. 나도 그를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아! 행운을 가질 수도 있었는데’ 하며 장난스러운 생각이 머리에 스치기도 했지만, 사과를 할 줄 아는 그 학생은 행운을 가져가기에 충분한 사람이었다. 혹은 쓰레기를 줍자마자 그를 마주친 것이 나의 행복이었다거나. 문득 귀를 기울이니 아주 옅게나마 매미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어릴 적 들리던 그 푸른 여름빛을 지닌 아름다운 매미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