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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생활수기공모(당선작)

제4회 [장려] 자연이 키운 아이, 자연과 하나되는 아이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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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illden / 작성일2025-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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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타국에 사는 내게 엄마가 봄을 알리는 문자를 보내왔다. "네가 심어 놓고 간 돈냉이(돌나물)가 또 새파랗게 올라왔다. 예쁘지?” 시골집 한편 작은 텃밭에 난 돌나물 사진을 딸에게 보내는 엄마의 마음. 엄마는 매년 그렇게 내게 봄을 선물한다. 어릴 적부터 시골에서 자란 나. 작은 텃밭이 나를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이야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어린 시절 시골집은 마당에서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하는 열린 공간이었다. 봄이면 집 밖으로 나가 쑥을 케어 오고 시냇가에서 재첩도 잡아오고, 가을엔 떨어진 은행 열매를 주어와 구워 먹기도 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들에 일을 나갔다가 광주리 가득 이것저것 뜯어와 우리 집 앞마당에 툭툭 던져놓고 가셨다. 시금치, 열무, 쪽파 등... 그날 수확한 채소들이 무어냐에 따라 저녁 반찬이 달라지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엄마가 되고보니아이들에게 어떤 음식을 줄까하고 고민하던 순간이 잦았다. 한국, 경주에 살 때에는 작은 텃밭에서 각종 채소들로 한끼 배불리 먹을 수 있었지만 해외살이를 하다 보니 그것도 여의치가 않다. 대신 집 앞 가게에 가서 유기농 채소들을 소량씩 사 온다. 가격은 비싸지만 되도록 먹을 만큼만 사서 며칠 안에 다 먹곤 한다. 집에서는 최소한의 요리를 한다. 오이와 토마토를 좋아하는 두 딸아이는 즐겨먹는 현미밥과 낫토, , 오이, 토마토만 있어도 밥 한 그릇은 뚝딱하곤 한다.

한 친구는 내게아이들이 어떻게 채소를 그리 잘 먹느냐고 물었다.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나는글쎄..” 하며 얼버무렸다. 곰곰이 떠올려보면 가르치거나 강요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나의 엄마를 떠올리게 된다. 어린시절 우리 집 밥상은 늘 풀밭이었다. 봄이면 쑥국, 돌김을 구워 주었고, 콩나물, 무나물, 김치와 된장찌개... 고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밥상. 계란 프라이는 특식이었다. 나는 엄마의 자연 밥상을 먹고 한 시간여 걸어 학교를 다니며 튼튼한 사람으로 자랐다. 엄마는 요리를 하다가도 텃밭의 고추나 방아, 쪽파를 뽑아 오라고 했다. 마트에 가려면 한 시간은 걸어가야 했던 시골마을에서 나는 어릴 적부터 자급자족의 방식을 배웠던 것이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이제 엄마가 된 내가 살아가는 방식 또한 내 어린 시절 엄마와 크게 달라진 게 없는듯하다. 아이들이 생채소를 잘 먹어주니, 그것도 맛있게 먹어주니 고마울 따름밥을 아주 천천히 먹는 둘째 덕에 밥 먹는 시간은 수다 시간이 된다. 토마토를 먹으며 경주의 텃밭에서 따먹던 토마토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기 없는 밥상에 익숙한 아이들. 큰 아이는 동물 사랑이 지극해 두 눈을 가진 생명을 먹지 않기로 한지 오래이다자연스레 기후 위기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어서 한 곳이 무너지면 다른 곳도 영향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이야기해준다. 지구 곳곳에는 육류 생산을 위한 공간이 늘어나고 나무들은 베어져 동물 사료의 생산지로 변해가고 있다는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준다. 모든 사람이 육식을 멈출 수는 없겠지만 우리들은 땅에서 난 성스러운 식물을 먹자고 이야기한다. 때론 웬만한 어른들보다 조그만 아이들이 더 열린 마음으로 음식을 대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작년 2월 한 달, 두 아이와 남인도 오로빌에서 지냈다. 우리는 오로빌 내 테라소울이라는 유기농 재배 농장에서 생활했다. 아침이면 졸린 눈을 비비고 나가 텃밭 잡초를 뽑았다. 둘째 딸 은유는 엄마가 뽑은 잡초를 큰 통에 담아 소에게 먹이로 주었다. 소의 똥은 다시 텃밭에 퇴비로 쓰였다. 아침 일을 마치면 농장 아저씨가 직접 소젖을 조금 짜 밀크티를 만들어 주었고 열심히 잡초를 뽑은 대가로 매일 아침 금방 딴 파파야를 쪼개어 아침 식사를 하기도 했다.

맨발로 잡초를 뽑는 아침이 참 좋았다. 지렁이와 각종 벌레가 나오는 기름진 흙을 밟을 때면 나도 흙에 심긴 식물이 된 느낌마저 들었다. 아이들은 소의 머리를 쓰다듬고 거위와 달리기 경주를 하고, 농장의 귀염둥이 개 세 마리와 친구처럼 지냈다. 동물과 식물과의 교감이 우리의 식생활을 더 자연에 가깝도록 이끌어준 것 같다. 남인도 오로빌은 그렇게 뭇 생명들과의 연결, 생태계의 순환을 가르쳐 주었고, 매일 아침 맨발로 황톳길을 걸으면서는모든 생명이 함께 잘 살수는 없을까?’ 하는 질문이 내 안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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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두 아이가 토마토를 사러 마트에 간 사이에 한국의 친구와 통화를 했다. 우리를 위해 토마토를 심겠다고 했다. 우리들이 갈 때쯤 주렁주렁 열려있을 토마토. 심고 물 주고 돌보는 수고를 할 친구네 식구들이 벌써부터 고마웠다.

매일 마주하는 밥상에서 이야기하는 생명, 먹거리, 기후 이야기. 배움이란 삶과 연결되어야 진정한 배움이라 하지   않았던가. 모든 생명은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가며, 자연에 기대어 꾸리는 식생활은 그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가.

오늘 큰 딸이 말한다. “엄마, 할머니가 만들어주는 나물이 먹고 싶어.” 나는 싱긋 웃으며그래, 우리 내년 봄엔 할머니표 나물 실컷 먹자.”한다.

아이들의 몸에 밴 식습관은 장차 아이들 삶의 결과 이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나 또한 자연을 닮은 맑은 사람으로 지내자고 다짐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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