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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생활수기공모(당선작)

제2회 [우수상] 없어도 괜찮은 (박해은) 제 2회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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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illden / 작성일202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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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주도에 산다. 푸른 바다와 오름의 섬. 그러나 중산간에 위치한 우리 집은 밭과 축사에 둘러싸여 있다. 가장 가까운 오름은 걸어서 갈 수 있지만, 가장 가까운 병원과 은행은 차로 15분 거리에 있다. 대형마트가 있는 시내에 가려면 1시간이 넘게 걸린다. 도시에 살면서 여행자로 방문했던 아름다운 섬은 불편한 삶의 공간이었다.


개인의 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면 대도시에 사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말이 정말 사실이었다. 시골에 산다고 자연스럽게 친환경적인 생활을 하게 되는 건 아니었다. 여기선 강한 햇빛, 바람, 습도에 물건이 금방 바래고 녹슬었다. 빈번하게 새 물건을 샀고 산 넘고 물 건너오는 택배도 자주 시켰다. 도시에서는 집 근처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있었지만, 지금은 마트, 병원, 도서관도 걸어갈 수 없다. 그래서 어딜 가든 무조건 차를 끌고 나갔다. 40분에 한 대씩 오는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귀찮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이곳의 인프라를 방패 삼아 더 큰 탄소발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시골에서 도시처럼 살 수 없다는 것이 이해는 갔지만 답답했다. 그래서 일종의 보상심리로 나의 비-친환경적인 생활에 스스로 면죄부를 주곤 했다. ‘이 정도 일회용품은 써도 되지, 나는 배달 음식은 못 먹으니까.’라는 식으로. 그러나 지난 몇 년간 끝없는 장마, 심한 태풍, 가뭄, 때 이르고 지나친 더위 등 이상기후 탓에 이제는 나조차도 도망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래서 나의 환경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의외의 사실을 발견했다. 이 섬의 불편함이 지구를 살리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이제는 모두가 무한한 소비가 환경에 치명적이라는 것을 안다. 지구를 살리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그린워싱, 에코마케팅에 속지 않고 그저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사방이 상점으로 둘러싸인 사회에서 우리는 필연적인 소비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딴곳에 사니 ‘덜 사는 일’이 생각보다 쉬워졌다. 나는 지난 2년간 새 옷을 3벌도 사지 않았는데 다름이 아니라 30km 떨어진 옷 가게에 가기 귀찮았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특가 세일을 해도 물건값보다 더 비싼 도서산간 배송비를 내야 한다면 그냥 지나쳤다. 새로운 음식이 유행해도 주변에 식당도 없고 근처 마트에서도 팔지 않는다면 안 먹으면 됐다. 접근성이 나쁘니 자연스럽게 소비가 줄었고,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예전처럼 많은 것을 원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욕망의 크기를 줄이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새로움 대신 익숙함을 선택하니 즐거움은 줄어들었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나쁘지 않았다. 새로 출시되는 식물성 대체육 제품이 궁금하지만, 그게 없어도 채식을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대신 두부를 열심히 먹으면서 기다리다 보면 동네 마트에서도 채식 만두를 구할 수 있었다. 새로운 패션이 유행해도 쇼윈도 대신 내 옷장을 한 번 더 들여다봤다. 그러면 구석에서 안 입던 옷을 발견해 새것처럼 입을 수 있었다. 게다가 연말에 사촌 언니가 안 입는 옷 한 보따리를 건네면 산타의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뻐할 수 있다. 신상 간식, 아보카도 같은 바다 건너오는 맛은 쉽게 접할 수 없어졌지만, 로컬푸드 코너에서 옆 동네에서 재배한 작은 딸기 한 팩은 살 수 있었다. 미친 듯한 달콤함도 강렬한 딸기향도 없지만, 그게 지구를 위한 맛이라면 그런대로 괜찮다. 


내가 제주도에 살면서 배운 한가지는 많은 것이 ‘없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욕심을 덜어내고 만족의 기대치를 낮추고 나니 내게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아쉬운 마음이 생기면 잠깐 아쉬워하고 그 마음을 그대로 흘려보내면 된다. 그리고 그 빈 자리는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채우면 된다. 욕망으로 꽉 채운 풍족한 삶 대신, 조금은 모자라지만 가늘고 길게 지구와 함께하는 삶을 생각해본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것.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댓글목록

Willden님의 댓글

Willden / 작성일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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