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 쓰줍하다 만난 개똥 봉지 (이준수) > 지구생활수기공모(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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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생활수기공모(당선작)

제3회 [우수상] 쓰줍하다 만난 개똥 봉지 (이준수) 제3회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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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illden / 작성일202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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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눈에 담을 아름다움이 많지만 내게는 새가 으뜸이다. 숲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유튜브 광고에 덜컥 유혹당한 것처럼 나는 새소리가 들리면 산책에 나선다. 대관령의 바람처럼 깨끗한 새 소리에는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이 있다. 기쁜 마음에 새소리를 따라가더라도 늘 행복한 운동 시간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산책로에는 거의 항상 쓰레기가 있다. 산책 왕복 코스를 오가며 휴지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면 '로또 당첨'이라 불러도 좋다. 쓰레기가 있는 길은 일상이다. 


아내와 나는 우리의 기분과 안녕을 위하여 짧은 산책로 구간만이라도 치우기로 했다. 쓰레기의 시작은 산책로 초입의 담배꽁초다. 흡연은 개인 기호이니 자유다. 그렇지만 흡연자들이 뒤처리는 잘 책임지지 않는 것 같다. 자유와 책임의 명백한 불균형. 새들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담배꽁초 필터를 먹이로 오인하고 삼킨다. 새들의 목구멍에서 필터를 꺼내는 심정으로 꽁초를 하나하나 주워 올렸다. 


어디선가 날아온 비닐봉지와 사탕 껍질을 주우며 산길을 오르자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휘이잇! 휘이잇!"하는 동고비 울음소리였다. 최근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길에서도 동고비를 관찰하고 소리를 녹음했었기에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몸 윗면이 청회색으로 덮인 귀여운 동고비는 나무 타기의 명수다. 나무 기둥을 위아래로 통통 뛰어다니는 것은 기본이며, 굵은 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움직이기도 한다. 동고비는 우리 부부를 경계하지 않았다. 무덤덤한 그 마음이 고마워서 쓰줍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동네 쓰레기 줍기를 게을리했더니 덤불 곳곳에 쓰레기가 눈에 띄었다. 비타민 껍질, 광고지, 테이크아웃 플라스틱 컵이 수시로 등장했다. 꽤 방치되었는지 햇빛에 외관이 바래있었다. 초등영어학원 전단은 집게로 들어 올리자 작은 조각들로 분해되어 떨어졌다. 할 수 없이 손으로 재차 주웠다. 쓰줍을 할 때는 집게뿐 아니라 목장갑을 준비하면 편하다. 


이번 쓰줍에서 발견한 놀라운 물건은 개똥 봉지였다. 개똥을 치우는 것은 반려견 산책의 기본 에티켓이다. 그래서인지 웬만한 분들은 배변 봉투를 지참해서 알아서 깔끔하게 정리하신다. 똥이 담긴 봉투를 꼼꼼하게 묶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흐뭇한 감정마저 든다. 그렇지만 경악스럽게도 개똥이 든 봉투를 엉뚱한 곳에 무단 투기한 현장을 종종 본다. 도대체 어떤 심리일까.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반려견 배변 처리를 잘하는 선진 시민이었다가, 주변의 눈이 사라지면 덜렁거리는 봉투를 휙 던져버리는 것일까. 잠시 심란한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나는 얼른 정신을 수습하고 개똥 봉투를 주웠다. 


쓰줍을 할 때 정신건강을 지킬 수 가장 좋은 태도는 'AGI'이다. 보험회사 이름이 아니라 ‘Assume Good Intension’의 약자로, 좋은 의도로 일이 그렇게 되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가령 길에 휴지 뭉치가 흉측하게 뭉쳐져 있다고 하자. 그 자극에 대응하는 최악의 방법은 저주다. ‘누가 자기 코 푼 휴지도 못 챙겨? 콧구멍에 다시 넣어주고 싶네.’ 이런 저주를 내리면 나의 하루만 망친다. 대신 ‘좋은 의도라고 생각하기’를 가동한다. 


갑자기 강풍이 불어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가 코를 풀다가 휴지가 바람에 날아가버렸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발생한 일이라 휴지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쓰레기로 남게 되었다고 믿어야 한다. 그래야 가벼운 심정으로 집게질을 할 수 있다. 이제야 휴지 주인의 찜찜한 기분이 풀어지겠구나, 하고 덕담도 좀 해주면서 말이다. 처음에는 격한 감정이 차올라 잘 안 되지만 기계적으로 반복하다 보면 익숙해진다.


산을 내려오다가 "까까까" 울음소리를 들었다. 까치였다. 흔해서 그렇지 까치는 무척 영리한 새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알아볼 수 있고, 자신을 괴롭힌 사람 얼굴을 오래도록 기억한다. 까치의 음색이 공격적으로는 안 느껴졌다. 우리 멋대로 쓰줍 배웅을 해주는 거라고 해석했다. 쌍안경을 들고 나무 위와 호수의 새들을 평화로이 구경하는 탐조 산책도 좋지만, 때로는 새들이 사는 보금자리 주변을 청소해 주어야겠다. 집게와 목장갑은 쌍안경만큼이나 중요한 탐조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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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den님의 댓글

Willden / 작성일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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