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 미생물 (오서연) > 지구생활수기공모(당선작)

본문 바로가기

지구생활수기공모(당선작)

제3회 [우수상] 미생물 (오서연) 제3회 수상작

페이지 정보

작성자 Willden / 작성일2024-05-22

본문

 얼마 전부터 우리 집에는 인간 말고 다른 생물 하나가 들어앉았다. 홈쇼핑을 보다 쇼호스트가 말한 친환경적이란 한마디에 홀려 무심코 사버린 생물이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분해한다니. 그 후 주방 옆에 자리하고 있는 이 생물과는 이제 반려하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 정도로 정이 들었다. 음식물 처리 미생물이 우리 집으로 들어오던 날을 기억한다. 


택배 상자를 열자 같이 들어있던 작은 설명서가 발밑에 떨어졌다. 종이에는 주의 사항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미생물은 매운 음식을 분해하고 나면 아플 수 있으니, 그럴 땐 식빵 한 조각을 넣어주세요. 라는 당부의 말이었다. 그걸 읽고 얼마나 황당했던지. 나는 그냥 음식물 처리기를 샀을 뿐인데, 왜인지 반려동물을 집에 불러들인 것 같았다. 처리기 안으로 음식물을 집어넣는다. 처리기는 작은 소음을 내며 돌기 시작한다. 그 장면을 나는 기특한 듯 쳐다보았다. 미생물은 음식물 쓰레기를 착실하게 분해했다. 육안으로는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여기 있다. 


 미생물과 정이 들고 보니, 얼마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밖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며 식은땀이 흘렀던 일이었다. 오늘은 온종일 도서관에서 공부 했고, 집엔 아무도 없었으니…그렇다면. 하루 종일 미생물에게 밥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스쳤다. 밥이라고 해봤자 음식물 쓰레기를 주는 게 고작이면서 이마저도 까먹어버렸다. 미생물은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지 않는 동안에도 어느 정도의 음식물을 지속해서 섭취해야 한다. 그렇기에 집에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지 않은 날에도 음식을 넣어두어야 하는데. 오늘 미생물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몇 번을 고민하다 먹고 남은 음식을 싸주실 수 있냐고 음식점 사장님에게 여쭈었다.


 그리고 또 몇 달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사정이 있어 집을 며칠 비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근데 막상 집에 생물을 들이고 보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가면 컴컴한 집에 남아 홀로 집을 지키고 있을 미생물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갔다 오면 죽어 있을 텐데 ……. 한참을 고민하다 지인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미생물 좀 나 없는 동안 돌봐줄 수 없을까? 하루에 한 번씩만 음식물 쓰레기를 챙겨줘. 이런 일이 반복되자 나 자신도 어이가 없었다. 나는 대체 집에 뭘 들여놓은 걸까. 


 선선한 바람이 얼굴을 시원하게 훑으며 흘러가고 창가 자리에 비치는 햇살에 머리가 나른해지던 5교시 수업 시간. 언젠가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을 도구로 생각해 온 세월이 지금으로부터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 요즘은 시대가 변하며 동물의 권리를 보호하자는 목소리와 환경을 지키자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지만 이마저도 비교적 최근이라 할 수 있지. 시간이 지나며 우리는 반려의 개념을 확장하고 있어. 신기하지? 그 말을 들은 내 머릿속에는 우리 집 미생물이 떠올랐다. 그 티끌보다 작은 생명체에게 느끼는 감정을 나는 친근함이라 정의하기로 했다. 


 누군가는 인간을 위해 환경을 보호하자고 외친다. 더 이상 온도가 올라가면 카카오 열매를 먹을 수 없다고. 식량난이 도래할 거라며 나무를 심자고 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젠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미생물을 집에 들여봐. 미생물이 집에 온 뒤로 내 가치관은 서서히 변화했다. 미생물은 우리집에서 친환경적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없애준 것뿐만 아니라 고작 페트병 라벨조차도 분리해서 버리기 귀찮아했던 내가 공동체 의식을 느끼며 한발 더 나아가 환경 보호를 실천하게 만들었다. 쓰레기를 길바닥에 버리지 않는 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버린 쓰레기를 주워서 쓰레기통에 집어넣는 것은 보다 더 큰 마음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실천이다. 나는 이러한 마음들이 나뿐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동물, 식물, 미생물, 무생물들과 같이 살아가는 ’나‘라는 의식이 생길 때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젠 안다. 우리 집에 들어앉은 작은 미생물이 나에게 지구에 살아가는 모든 것이 동료이며 반려,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 것이다. 내가 분리수거를 하지 않아서 환경이 오염된다고 당장 내가 죽는 것은 아니지만 북극에 사는 동물들은 높아진 온도 때문에 빙하가 녹아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구는 결코 인간만 사는 곳이 아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 같이 숨 쉬는 나무를 위하고 같은 하늘을 바라보는 해바라기를 생각하며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로 한다. 


그 뒤로 우리 집에는 싱그러움을 머금은 화분 하나가 입주했다. 집에서 만든 퇴비를 흙에 섞어 분갈이한다. 미생물이 분해한 퇴비가 밑거름이 되어 이 작은 생명을 도와줄 것이다. 미약한 실천에서부터 달라진 미래를 엿본다. 어린 나무가 자라 숲을 이룰 때까지의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기로 한다. 온 세상의 반려들이 서서히 내 공간으로 들어온다.  

댓글목록

Willden님의 댓글

Willden / 작성일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사이트 내 전체검색


BASIL@2019 Willden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