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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생활수기공모(당선작)

제4회 [입선] 지구를 위한 홍대병 (서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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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illden / 작성일2025-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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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지독한 홍대병이 있다. 남들이 다 입는 브랜드는 멀리했고, 흔한 디자인이라 생각되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게 멋이라고 믿었고, 그렇게 ‘나만의 것’을 쫓던 시절, 내가 가진 고집을 가장 따뜻하게 이해해준 사람은 엄마였다. 홍대병에 걸린 나를 위해 엄마는 재봉틀을 잡았다. 하루는 재봉틀 수업에 가서 재봉틀을 배우고, 또 하루는 방 안에 앉아 드르륵, 드르륵 재봉틀을 밟아가며 뭔가를 만들었다.


“짜-잔, 어때? 아주 예쁘지?”

보조개가 쏙 들어가게 웃던 엄마가 내민 건 집에 있는 자투리 천으로 만든 이상한 가방이었다. 겉은 갈색 천, 안감은 무슨 꽃무늬인지도 모를 천, 어깨끈은 집에서 굴러다니던 끈이 달려 있었다. 나는 그 가방을 어깨에 메어보았다. 엄마가 그새 재봉틀의 달인이라도 된 걸까? 핏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손으로 세게 잡아당겨도 끈이 떨어지지 않았다. 바느질은 단단했고, 손끝에서 만든 정성이 전해졌다.


나는 엄마에게 활짝 웃으며 말했다.

“하나밖에 없는 이 이상한 가방, 아주 맘에 들어!”

그 말에 엄마의 보조개가 다시 쏙 들어갔다. 그날 이후 엄마는 재봉틀의 연금술사가 되었다.

버려진 천은 화장품 파우치로, 남은 털실은 컵 받침으로, 해진 셔츠는 앞치마로 다시 태어났다. 엄마는 마치 모든 물건에 두 번째 생을 주는 마법사 같았다.


나는 다행히 유행하는 걸 따라 하기 좋아하는 아이가 아니었고, 엄마가 만들어준 ‘나만의 것’들이 더 좋았다. 유행과는 거리가 멀고, 어디에도 없고, 오직 하나뿐인 우리 엄마가 만든 하나뿐인 옷과 패션 소품들. 그건 내 홍대병을 달래주는 유일한 처방약이었다.


그런 엄마를 곁에서 지켜본 덕분일까. 나는 옷을 함부로 소비하지 않는 성인으로 성장했다. 옷을 하나 사면 그 옷과 함께 보내는 추억들이 자꾸만 소중해졌다. 입고, 또 입고, 그 옷에 내 하루들이 스며들었다. 한 번 산 옷은 해질 때까지 오래도록 입었다. 아마 옷 하나에 깃든 마음의 무게를 어렴풋이 느끼게 된 덕분이었을 것이다. 한 옷에 정을 붙이면, 그 옷을 만든 브랜드에도 자연스레 정이 간다. 하지만 해마다 바뀌는 패션 트렌드때문일까. 내가 좋아했던 옷과 브랜드들은 자꾸만 사라져갔다. 


패션계에 ‘친환경’ 열풍이 불었을 때, ‘에코 패션’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패션 제품들이 만들어졌다. 그중 대표적인 게 바로 에코백이다. 에코백에는 환경을 뜻하는 ‘eco’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과잉생산 된 이후부터는 그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과잉생산으로 인해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해 환경오염 이슈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때 나는 처음으로 친환경을 목적으로 만들었더라도 필요 이상으로 만들어지면 결국 환경오염으로 이어진다는 걸 깨달았다. 


친환경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기업들은 SNS를 통해 기업의 이미지를 친환경적으로 보이게끔 포장했다.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환경을 위한 브랜드처럼 보이게 만드는 그린워싱 마케팅이 자연스럽게 우리 소비 속에 스며들었다. 결국, 유행은 환경을 배려하지 않았다. ‘환경’이 유행의 언어로 소비되고 있었을 뿐이었다.


한국의 그린워싱 문제에 대해 한 환경보호 전문가는 말했다.

“환경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튼튼한 옷 하나를 사서 오래 입으세요.”

전문가의 말처럼 진정한 환경보호는 유행처럼 지구를 쓸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 삶 속에서 ‘꾸준히 남아 있어야 할 태도’에 있었다.


나는 오늘도 엄마가 만들어준 하나뿐인 가방을 멘다. 나는 아직도 물려받은 트렌치코트를 입는다. 어머니는 여전히 보조개를 띄우며 재봉틀을 매만진다. 지독한 홍대병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며 살아 움직이는 한, 환경보호를 위한 내 태도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왕이면 모든 지구인이 한 번쯤은 지구를 위한 ‘홍대병’에 걸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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