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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생활수기공모(당선작)

제4회 [입선] 컵을 쌓을수록 자라나는 마음 (박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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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illden / 작성일2025-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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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한쪽에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어느새 높이는 허리춤을 넘었다. 더 이상 쌓을 수 없을 만큼이 되어서야 차에 옮겨 싣는다. 이만큼이나 모았다는 뿌듯함과 소소하게 받게 될 반환금을 떠올리니 입가엔 웃음꽃이 피었다. 환급받은 돈으로는 사무실 식구들을 위한 간식거리를 사 온다. 재활용을 통해 누리는 소소하고도 확실한 행복이다.


  제주에선 일회용 플라스틱 컵 퇴출 운동이 한창이다. 음료를 주문할 때면 컵에 일정 금액의 보증금이 붙는다. 보증금이 붙은 컵엔 바코드 스티커가 붙어 있다. 음료를 다 마시고 나서 빈 컵을 인근 카페에 마련된 재활용 기계에 반납 시 한 컵당 300원 정도의 자원순환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반환하지 않는다면, 플라스틱 컵을 돈 주고 사는 셈이다. 


  내가 낸 돈을 그대로 돌려받을 수 있음에도 귀찮다는 핑계로 보증금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 만약, 길가에 300원이 떨어져 있는데 줍기 귀찮아서 지나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일회용 컵은 땅에 떨어져 있는 300원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300원을 줍는다는 생각으로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모으기 시작했다.


  내가 사용한 컵뿐 아니라, 사무실 휴지통에서 컵을 발견하면 깨끗이 씻어서 쌓아둔다. 어쩌면 남들 눈엔 유별나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고작 300원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냐고. 300원이 모이고 모이면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 된다. 그 돈을 모아 간식을 사서 사무실 식구들과 정을 나눈다. 어쩌면 플라스틱 컵은 300원의 가치보다 더한 값어치를 지녔을지도 모른다. 정을 주고받고, 환경을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은 사무실 식구들 전부 동참해 함께 컵을 모은다. 


  컵을 반환하면 돈을 돌려받기에 실천한 행동이 어느새 습관이 되었다. 제주에서 다시 육지로 돌아왔지만, 몸에 밴 습관은 어디 가지 않았다. 여전히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높이 쌓아두고 어느 정도 모이면 재활용을 한다. 


“컵을 높이 쌓아둬서 뭐해요? 그냥 버리면 되잖아요.”

“습관이 되어서 그래요. 이렇게 하면 부피도 줄고, 재활용하기도 더 쉬워요.”

 

  어느새 재활용 전도사가 되어 있는 나를 발견했다. 작은 실천이 습관이 되었고, 습관은 생활이 되어 깊숙이 뿌리내렸다. 지금은 사무실 책상 위엔 늘 텀블러가 놓여 있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단체로 커피를 주문하는 경우엔 어쩔 수 없이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사용한다. 커피를 다 마시고 나선 어김없이 컵을 씻고 쌓아 둔다. 몇 번 그렇게 하니 저절로 동료들도 하나, 둘 따라서 컵을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집에는 나보다 더한 재활용 지킴이가 있다. 아내 덕분에 올바른 재활용 배출 방법에 눈을 떴다. 페트병을 두른 비닐은 무조건 떼고, 일회용 식기는 반드시 깨끗이 씻어서 재활용한다. 결혼 전에는 씻지 않고 그저 분류만 해서 버리면 되는 줄 알았다. 아내를 만나고는 서서히 아내를 닮아간다. 어느 날, 아내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왜 그렇게 재활용에 진심이야?”

“우리 세아를 위해서야. 우리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물려주고 싶어.”


  아내의 말은 내 마음속 깊숙이 새겨졌다. 아내는 우리 아이에게 깨끗한 지구를 물려주고 싶어 했다. 지구를 바꾸기엔 어쩌면 너무나 작은 실천이지만, 그런 작은 행동들이 결국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킨다는 것을 아내를 통해 배웠다. 아내 덕분에 내가 변화되었고, 나의 작은 변화가 주변 사람들에게 퍼져나갔다. 변화는 작은 실천에서부터 비롯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컵을 쌓을수록 마음이 자라난다. 지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이. 우리 아이에게 물려줄 지구가 지금보다 더 맑고 푸르면 좋겠다.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 이름을 ‘세아’로 지었다. 세아가 살아갈 아름다운 지구를, 작은 실천으로 가꾸어 나간다. 


“세아야, 아빠 봐봐. 이렇게 컵을 깨끗이 씻고, 하나씩 차곡차곡 쌓는 거야.”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를 보고 배울 아이에게 지구를 사랑하는 마음과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을 심어주고 싶다. 두 돌을 앞둔 아이에게 컵을 쌓는 법부터 가르친다. 언젠가 손잡고 함께 재활용하러 가는 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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