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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생활수기공모(당선작)

제4회 [입선] 꿈꾸는 몽당연필 (느린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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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illden / 작성일2025-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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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일 년이 지난 기분이에요.”


몽당연필이 하나 늘었다는 소식에 4학년 친구가 뜻밖의 소회를 전했다. 이럴 때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목격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책을 사이에 두고 어린이들과 생활하고 있다. 독서를 하고 글을 쓰면서 아이들과 마음을 나누고 쌓는다. 우리 아이들이 손 뻗는 서가엔 환경에 관한 책이 유독 많다. 책 선정은 어른들의 몫, 어린이는 어른이 골라 놓은 세계 속에서 자신만의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 간다.

환경 보호를 왜 해야 할까요? 지구를 지키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아이들은 익숙한 물음인 듯 답을 척척 써내고 쉬는 시간이면 종이컵을 꺼내 물을 마신다.

지구인이 되고부터 이렇듯 불편한 마음을 느끼는 순간이 잦다. 편리함을 쫓는 이들을 붙잡고 매번 설득할 수도 없는 일이다. 세상이 광대하고 학원이 넓다면, 내 교실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 그렇게 우리는 몽당연필을 모으는 중이다.

책 읽고 글 쓰는 매일의 활동은 순간에 휘발되는 일이 아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다. 그 쌓여 가는 시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확실하고 직관적인 방법은, 우리가 쥐고 있는 연필을 바라보는 것. 연필이 짧아지는 만큼 생각이 깊어진다는 의미를 담아 ‘꿈꾸는 몽당연필’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의미를 품고 뿌듯함을 선사하는 ‘꿈꾸는 몽당연필’은 지구에 작은 이로움을 줄 수도 있다.

우리 손에 쥐어진 조그마한 연필 한 자루로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아쉽게도 당장은 없을 것이다. 즉각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면 지구는 아프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사람의 마음가짐 정도는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은 이렇듯 사소한 씨앗에서 출발한다고 믿는다.

학원 강사로 지내다 보면, 작은 것 하나라도 더 좋은 걸 내 아이에게 주고 싶어 하는 어른들을 마주하게 된다. 부족함 없이 키우고 싶은,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내겐 자식은 없지만, 나와 일상을 공유하는 우리 교실 아이들에게 좋은 걸 주고 싶은 욕심은 있다. 짧은 연필을 새 연필로 바로 바꾸어 순간의 부족함을 못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부족함이 내일의 채움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몸소 느껴 보게 하는 것. 당장은 성가실지라도 우리의 매일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마침내 보탬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내가 누린 어린 시절, 지금보다 좀 더 깨끗했던 지구를 다시 만나게 하는 일, 그런 세상을 너희들이 직접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알려주는 일은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사랑이다.

그런 내 사랑은 항상 조심스러워, 짧아진 연필 옆에 기다란 연필과 연필깍지를 함께 꽂아 두었다. 강요로 여겨져 혹여나 나쁜 감정 심어지지 않게, 자유라는 여유를 챙겨 두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스스로가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심어지는 법이니까.

다행히도 이젠 교실에 들어오면 몽당연필부터 찾는 아이들이 생겼다. 몽당연필이 탄생하면 간식이라는 보상이 따르기에, 아이들은 꿈보단 간식을 찾는 쪽에 가깝지만, 기쁨의 감각은 오래 남아 있기 마련이다. 시나브로의 힘을 믿으며 싱긋 웃음 짓는다.

어린이와 책으로 만날 수 있는 삶을 특혜라고 생각하며 지낸다. 이 교실에서 책만큼 좋은 선생은 없기에 지식 채움의 면에서 내 역할은 미미하다. 다만, 책이 주는 지혜와 우리의 생활이 분리되지 않는 수업은 꾸려나가고 싶다. 자연스럽게 체득할 기회를 흘려보낼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어느 변방 작은 교실을 지키는 나는 큰 임무를 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12개의 꿈꾸는 몽당연필을 얻었다. 기념으로 챙겨 가겠다는 2학년 친구의 해맑음에 교실이 환해진다. 연필이 닳은 이상으로 우리가 나눈 마음이 쌓였음이 느껴진다. 책장에 꽂힌 책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서툴러도 허투루는 없기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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