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입선] 계절을 지켜라 (유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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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예능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다. 평소 생활 전반에 절약을 실천하는 가수 김종국님의 집을 치워주는 내용이었는데, 많은 양의 비닐봉지를 버리자는 다른 출연자들과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재활용을 한 후 버려야 한다고 우기는 김종국님 때문에 재밌게 본 회차였다. 그런데 곧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졌다. 영상에 달린 김종국님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 때문이었다. 물론 영상 속 모아둔 비닐봉지들의 양이 많아 보이기는 했지만, 환경을 위해 한 번이라도 비닐봉지를 사용한 후 버리려는 김종국님의 마음이 느껴져서 배워야 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었다. 김종국님과 결혼하는 사람은 저런 행동 때문에 피곤할 거라는 악플들이 많았다.
사실 이번 뿐 아니라, 깨끗하게 쓴 물티슈는 가지고 와서 옆에 잘 두었다가 설거지를 하기 전 기름 때 같은 것을 닦아내고 사용 한다거나, 한 여름에 에어컨을 틀지 않고 산다는 김종국님의 영상에도 비슷한 댓글을 본 기억이 있다. 아니 그가 출연하는 예능 뿐 아니라, 그처럼 유명하지 않지만 환경을 위해 어떤 실천을 하는 사람들의 영상에도, 비슷한 느낌의 댓글을 늘 달린다. 그 댓글들을 보고 있으면 내게 주어진 편리함을 어떻게든 사수하려는 마음이 느껴져서, 당신의 행동으로 내 편리함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싶지 않다는 이기심이 느껴진다.
맞다. 어쩌면 그 사람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비닐봉지를 한번 더 사용하기 위해 쌓아두는 것도, 물건을 아껴 쓰는 것도. 냉난방을 아껴 쓰는 행위도 모두 내 앞에 놓인 편리함을 방해하는 나 하나 바뀐다고 환경문제가 뚝딱 해결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환경을 위해 채식을 하는 행동이나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는 행동, 그리고 김종국님처럼 환경을 위해 작은 불편함을 참아내는 행동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편리함이, 사라져가고 있는 계절과 바꿀 만큼 소중한 것이냐고.
며칠 전 초등학생 아들을 키우고 있는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음식을 준비하는 친구를 대신해 학교 숙제를 봐주고 있었는데, 숙제의 내용은 계절을 그려오는 것이었다. 숙제 내용을 듣자 내 머릿속에는 벚꽃이 예쁘게 핀 봄과, 푸른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여름, 붉은 낙엽을 주워 책갈피에 넣는 가을, 하얀 눈이 내려 눈싸움을 하던 겨울이 스쳐 지나갔다. 모두 지나온 내 어린 시절 속에 계절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된 추억이었다. 그러나 아이의 생각을 달랐나 보다. 황사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과, 폭염, 그리고 조그만 얼음에서 움직이지 못 하는 북극곰 같은 것을 생각해낸 것이다. 아이의 추억 앨범 속에는 계절과 계절 사이, 만들어진 아름다운 풍경은 없었던 것이다.
적어도 편리함 하나를 챙기자고 아이의 추억을 빼앗아가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 환경정책이나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온전히 누렸던 계절을 지나오며 만들었던 아름다운 추억들을 말이다.
물론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 하나의 행동으로 세상이 변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환경을 위해 편리함을 포기한 당신의 작은 행동이 흐름이 되어 조금씩 불편함을 참아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유권자들을 의식한 환경 정책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그리고 그런 소비자를 의식한 기업들이 변화하는 큰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세상을 움직이는 큰 흐름을 위해, 이 땅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계절의 추억을 선물하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해 보고자 한다. 더 이상 김종국님의 환경을 위한 행동이 ‘웃긴 일’ 이 아닌, 배우고 따라 하는 ‘실천하는 일’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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