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입선] 나는 18살, 비건인이다. (진황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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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가는 곳마다 “왜 비건 하는 거야?”라는 말을 듣는다. 복잡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5년 전인 2020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5년 전, 학교에서 제주도로 탐방 갔다. 난생처음 제주도 땅을 밟았다. 그때 내 나이는 13세.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제주도 곳곳을 돌아다녔다. 하루는 남방큰돌고래를 보호하고 수족관에 있는 돌고래를 구출하는 활동을 하는 ‘핫핑크 돌핀스’에 방문했다. 돌고래를 볼 생각에 신나있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그 흥은 가라앉았다. 강의하신 분께서 돌고래들이 인간 때문에 너무 아파하고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어린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가 돌고래를 때린 것도 아니고, 왜 힘들어하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강의 후, 돌고래들이 뛰어오르는 모습을 육지에서 보았다. 윤슬들 위로 날아오르는 돌고래를 처음 보았다. 그때, 배 하나가 돌고래들 근처로 다가왔다. 배의 등장에 돌고래들은 도망가기 시작했고 배는 그들을 쫓아갔다. 돌고래들은 놀고 있던 장소를 벗어나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깨달았다. 인간의 욕심과 탐욕 때문에 동물들이 진짜로 고통받는다는 것을.
그날 저녁 우리 반은 다큐멘터리 2편을 같이 시청했다. 시청한 다큐멘터리는 「시스피라시」와 「카우스피라시」였다. 다큐는 그린피스를 비롯한 세계적인 환경단체들이, 목축업을 하고 원양어업에 종사하는 기업으로부터 지원을 상당히 받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목축업과 원양어업은 기후 위기의 주범이라고 불릴 만큼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와 메탄을 공기 중에 발산한다. 또 열대우림을 파괴하면서 가축들을 기르고 바다에 사는 모든 생명체를 잡아들인다. 그중 멸종 위기 종은 물론, 잡지 않아도 되는 물고기와 산호를 잡고 죽인다. 가축들을 키우기 위해 파괴된 열대우림은 더 이상 서식지로 기능하지 못한다. 멸종 위기 종들과 야생 동물들을 떠나야 하지만 떠날 곳이 없어 죽는다. 인간이 육식을 위해 자연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다큐멘터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충격은 상당했다. 기후 위기로 인간들이 다 죽을까 봐 걱정했던 내가, 기후 위기의 주범이었다니. 내가 먹는 고기와 해산물들, 치즈와 우유가 윤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생산되었고 이 때문에 지구가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세계적인 환경단체들이 우리를 구해줄 것이라고 믿었는데, 그 믿음이 불과 몇 시간 만에 무너져 내렸다. 다큐를 시청한 뒤 저녁을 먹었는데, 하필 저녁으로 갈치구이가 나왔다. 제주도라는 지역 때문인가, 갈치를 선생님들이 사 오셨다. 나는 선생님께 “갈치구이를 못 먹겠어요.”라고 말한 뒤 식당에서 빠져나왔다. 이와 같은 선택을 한 이유는 다큐 마지막에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 덕분이었다. 그는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 모든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간단해요. 육식하지 않는 거예요. 목축업과 원양어업으로 생산된 모든 물품을 구매하지 않는 거죠. 보이콧같이 말이에요.”
5년 전 제주도에서 먹지 않은 갈치구이는, 내가 처음으로 원치 않아서 거부한 육식 제품이 되었다. 제주도의 기억은 너무나도 강렬했고 그때 나의 다짐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비건을 하자.’ 그 뒤로 나는 비건을 한다. 나에게 누나 2명이 있어서 우리는 함께 비건을 실천했다. 부모님은 우리가 하고 싶으면 해도 된다고 허락해 주셨다. 최근 들어 “고기를 먹는 게 어때?”라는 질문을 하는 것을 봐서 우리의 다짐이 오래갈 것으로 생각하지 못하신 것 같다. 나와 누나들은 5년째 비건을 유지하고 있다. 고기를 사랑하던 나는 이제 고기를 안 먹게 되었다.
나아가 학생들이 학교에 비건으로 식단을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내가 재학 중인 학교가 대안학교인 터라, 학생들이 요구하면 대화의 장이 열린다. 제주도를 갔다 온 이후에 고기를 못 먹겠다는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학교는 바로 비건 식단으로 전환했다.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5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학교는 비건 식단을 유지하고 있다.
2025년에 18살이 되는 지금도 나는 비건을 하고 있다. 이제는 비건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식재료를 살 때 원재료명을 항상 확인하는 행동이 습관이 되었다. “비건을 언제까지 할 거야?”라는 질문을 최근 들어서 듣게 되었다. 너무 오래 비건을 해버린 걸까, 비건을 안 하는 나의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비건을 유지하고 실천할 수 있게 한 나 자신에 감사함과 존경심을 품는다. 5년 전 그때 돌고래들의 소리를 듣고 바다 위를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짧게 반짝하는 윤슬처럼 나의 실천이 짧았을 수도 있지만, 계속해서 헤엄치고 날아오르는 돌고래들과 함께 비건의 여정을 함께하고 있다.
돌고래야 고마워. 나를 비건인으로 만들어 주어서.
<핫핑크 돌핀스를 만나 강의를 듣는 모습 (맨 뒷줄 왼쪽에서 2번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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