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입선] 알맞은 시간 (홍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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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주도 서귀포의 한적한 마을 남원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2018년에 오픈하면서 일회용 컵과 빨대, 용기를 사용하지 않았고, 2025년 2월부터 대나무로 만든 친환경 일회용 컵과 뚜껑, 펄프 도시락 통을 사용하게 되었다.
카페를 준비하면서부터 마음먹었던 테이크 아웃을 하지 않기로 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
첫 번째, 한적한 마을 안쪽에 위치해 지나가면서 들를 곳은 아니라서 포장 손님은 없을 것이고 멀리까지 찾아온 손님이 공간을 즐기며 여유 있게 머물다 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두 번째, 어쩔 수 없이 사용하고 있는 호두 정과 포장 비닐 및 각종 재료의 패키지, 우유팩, 캔 등 의식하고 생활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분리수거를 꼭 해야 할 정도로 배출되고 있는 쓰레기를 굳이 음료 한번 마시고 버려질 일회용 잔까지 공급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으로 약 5개월 동안 운영을 하다가 빗나간 예상으로 방침을 수정해야 했다. 비행기 시간에 쫓겨 잠깐 들러 음료나 디저트를 사 가려는 손님, 아이가 잠들어 부모 모두 차에서 나올 수 없는 상황, 마시다가 남은 음료를 가져가고 싶었던 손님, 매장에서 마시고 맛있어서 나가는 길에 한잔 더 사 가려고 했던 손님 등 포장을 필요로 하는 상황들은 종종 발생했다. 마시던 식혜 병을 씻어 담아드리거나 손님 차에 있는 다른 카페에서 마셨던 종이컵을 헹구어 담아드린 경우도 있었다.
드물게 테이크 아웃만을 위해 방문했던 손님들이 방문했다가 빈손으로 돌아갈 때는 -사실 그 한두 잔의 매출이 아쉬웠던 오픈 초기에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여러 가지 미안한 상황들이 반복해서 일어나다 보니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환경 운동을 하고자 함도 아니고 처음 마음을 지키며 효율적인 매출 증진의 목적을 찾아가려는 방법을 찾으려는 고민이었다.
텀블러를 제작해 판매를 하거나 보증료를 받고 빌려줄까 했지만 에코백이 더 이상 에코백이 아닌 것처럼 텀블러 사용을 독려하는 사회 분위기로 유행처럼 들고 다니다가 또 언젠가는 시들해질 것 같았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시작에 종이컵 보다 더 묵직한 쓰레기를 생산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시작할 때 생각했던 이유를 곱씹으며 이런저런 생각 끝에 사용하지 않는 텀블러(또는 물통)를 기증받아 활용하기로 했다. 인스턴트커피와 묶인 판촉물로 따라오거나 어느 모임에서 단체로 만들었는데 사용하지 않는, 어느 집 찬장에나 쌓여있는 그것들 말이다. 딱히 쓰지는 않는데 내 손으로는 버리지 못하는 것들을 기증받고 커피를 제공했다. 그리고 그 기증받은 텀블러(또는 물통)는 깨끗하게 세척해서 테이크 아웃 손님께 무상으로 빌려주었다.
사용 후 반납을 원칙으로 하지만 계속 사용해도 괜찮다고 안내했다. 근처 숙소에 묵는 손님들은퇴실하는 날 카페 오픈 전 문 앞에 두고 가기도 하고, 도민 중에는 1년 넘게 보관하고 있다가 근처를 지날 때 챙겨와 주는 분도 있었다.
기증이 없거나 반대로 너무 많아서 감당이 안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으로 시작했지만 다행히 적당한 수량을 늘 유지하게 되었다. 횟수는 많지 않지만 행사 등으로 맞추고 남은 재고를 박스째로 갖다주는 분들이 종종 있었다. 기증받은 텀블러의 수량이 줄어들 때면 또 누군가로 인해 채워졌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 견디는 것이었다. 포장 손님에게 우리의 운영 방식을 설명하는 과정으로 지칠 때도 있고 우리의 방식을 이해해 주지 못하고 ‘뭐 이런 데가 있어’, ‘유난이네’ 하면서 화를 내고 돌아가는 손님도 있었다. 그런 날은 좋지 않은 감정이 맴돌아 하루의 기분을 망쳤다. 사용하지 않는 텀블러의 자원순환보다 무료 커피에 초점이 맞춰진 손님을 마주할 때는 씁쓸하기도 했지만 본인의 불편을 감수하면서 사용 후에 반납해 주고, 사용하지 않는 텀블러를 모아 깜짝 선물로 택배를 보내고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줄 때면 힘을 얻었다.
포장이 만연했던 코로나 팬데믹에도 일회용 없이 버텨냈는데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6년의 5개월만에 일회용 용기를 사용하지 않는 방침을 철회했다. 포장하러 왔다가 하지 않고 그냥 가서 놓친 커피 한 잔의 매출이 아쉬운 하루하루가 반복되다 보니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테이크 아웃을 전혀 하지 않다가 텀블러를 기증받아 사용하기로 한 것도 결국에는 매출이 목적이었다. 지구를 살리기 전에 나부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지배했다. 지속적인 경기 침체로 예전 같지 않은 매출에 씁쓸한 결론을 내야만 했다. 내가 그동안 했던 실천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패배감이 들기도 했지만 그간 표시해온 현황판을 보고 나름의 위안을 얻었다. 기증인은 약 150명, 수량은 약 1000개, 기증받은 텀블러로 약 950잔을 팔았고, 다시 돌려받은 것도 약 300개 정도였다. 결국에는 일회용품을 사용하게 됐지만 그간의 시간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다.
제주 시골 마을의 작은 카페에서 안간힘으로 해낸 무모한 행동이 이렇게 끝났다. 하지만 카페를 오픈할 당시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다시 이 무모한 일을 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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