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입선] 천 기저귀 (최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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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태어난 순간부터 쓰레기를 만든다. 일회용 기저귀부터 시작해서 물티슈, 수유패드, 모유 저장팩은 당연지사다. 신생아실에 유리창 너머로 아이를 바라본다. 물티슈로 엉덩이를 툭툭 닦아내고 일회용 기저귀를 슥 채운다. 그러다 대변이라도 보면 채 10분이 지나지 않아 일회용 기저귀 한 장이 버려진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저귀 하나가 썩는 데 얼마나 걸리지?’ 500년,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만들어 낸 쓰레기는 그 아이가 죽을 때까지 썩지 않는다. 약 3년 동안 기저귀를 쓴다고 고려했을 때 쓰이는 기저귀 개수를 계산해 봤다. 하루 10장씩 1,095일을 사용하면 10,950개의 쓰레기가 발생한다. 숫자를 보자 고개를 저었다. 이건 아니다.
집에 돌아오니 중고로 구해낸 각종 천 기저귀 물품이 놓여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신생아가 배냇 웃음을 지으며 덩그러니 누워있다. 수많은 조합 중에 처음으로 발진에 좋다는 통풍 커버에 땅콩 기저귀를 채워본다. 귀여운 디자인과 포근한 면 촉감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어화둥둥 품에 안아보았다. 그런데 따뜻해지는 손바닥과 가슴팍. 무슨 일인가 싶어 살펴보니 소변이 다 새어버렸다. 당황스러움에 ‘천 기저귀 원래 다 이런 건가?’라며 잠시 고민했다. 매 순간 이렇게 젖으면 어떡하나.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 100년 치 쓰레기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정보의 바닷속을 헤엄쳐서 또 다른 조합을 찾아내었다. 담요를 잘라서 통풍 커버 안에 넣어주면 미미하지만 방수력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옳거니, 오래도록 묵혀있던 담요를 잘라서 커버 안에 넣어본다. 방수가 될까 하는 호기심이 가득한 난 수시로 기저귀 겉을 찔러 소변을 누었는지 살펴본다. 그렇게 10분이 지났을까, 손가락 끝에 축축함과 온기가 느껴졌다. 그런데 커버는 젖지 않고 뽀송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낮천(아이가 깨어있는 시간에 쓰는 천 기저귀)에 성공한 나에게 이 발견은 신세계였다.
낮천에 익숙해지자 외천(외출용 천 기저귀)도 도전해 보고 싶어졌다. 통풍은 안 되지만 방수력이 일회용 기저귀만큼 뛰어난 완방커버(=완전방수커버)에 소변 흡수를 많이 해줄 수 있는 마화 인서트 2장을 넣어주었다. 3시간 동안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았는데 인서트가 소변에 푹 젖어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생식기 주변 살갗은 일회용 기저귀 못지않게 뽀송했고 이것이 천 기저귀가 일회용 기저귀의 역할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고 믿음을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 젖은 기저귀는 지퍼백이나 일회용봉투 대신 빨아 쓸 수 있는 방수용 가방에 담아 왔다. 엉덩이는 물티슈 대신 와입스에 물을 적셔서 닦아주니 외출하는 동안 일회용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았다.
천 기저귀 용품만으로도 일회용 기저귀 못지않게 편리할 수 있다. 물론 그 편리성이 일회용품을 100% 따라갈 수 없지만, 나의 불편함이 내 아이가 살아갈 환경에 큰 보탬이 되리라 생각하니 천 기저귀 생활이 즐거울 수밖에 없다.
내가 천밍아웃(천기저귀 사용을 커밍아웃)하면 열에 아홉은 이런 반응이다. “요즘 일회용 기저귀 잘 나와요. 유별나게 누가 천 기저귀 써요. 손목 다 나가요.” 유별나면 어떤가, 그 유별함으로 우리 아이가 숨 쉬는 환경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해낼 거라 자신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천 기저귀를 망설이는 보호자가 있다면 용기내길 바란다. 당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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