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장려] 음식물 쓰레기와 비료 (김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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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본의 작은 마을 고카세쵸에 귀촌한 지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원래 나는 서울에서 잘나가는 광고기획자였다. 기획서 하나로 수십억 원짜리 캠페인을 따낸 적도 있었고, 분기별 실적 발표 때면 나의 이름이 회의실 스크린에 가장 먼저 떴다. 하지만 어느 날 아침, 고층 빌딩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너무도 피로하고 공허해 보였다.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지?”
그 한마디가 내 인생을 바꿨다. 나는 바로 사표를 던지고, 한때 영화에서나 보던 일본의 작은 마을 고카세쵸로 이사를 갔다.
나는 작은 텃밭과 조그만 나무집, 몇 권의 책과 낡은 커피머신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공동 수거장 앞을 지나가다 발걸음을 멈췄다.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가 나의 발목을 잡았다. 음식물 쓰레기가 쌓여 썩고 있었고, 파리떼가 윙윙대며 그 위를 맴돌았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썩은 음식물 더미를 바라보았다. 배추껍질, 고깃국물에 젖은 비닐, 반쯤 먹다 남긴 밥.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시선을 떼지 않았다. 어디선가 본 장면 같기도 했다. 도시에 있을 때 매일 밤 음식 포장 쓰레기를 들고 나가던 자신의 뒷모습이 겹쳐졌다.
‘다들 먹고 버리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지… 나도 그랬고.’
그날 밤, 나는 혼자 커피를 마시며 인터넷을 검색했다. ‘음식물 쓰레기 문제’, ‘퇴비화’, ‘지속 가능한 농업’—자꾸만 그 썩은 더미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저걸 그냥 버리기엔… 너무 아깝잖아.’
그렇게 생각한 나는 노트북을 덮고 창밖을 바라봤다. 뒷마당 텃밭 한구석이 어둠 속에서도 윤곽을 드러냈다. 비료 한 줌 없이도 잘 자라는 저 땅에, 만약 음식물이 돌아간다면—.
‘비료로 만들면 어떨까?’
아직 확신은 없었지만, 마음속에 작은 불씨가 하나 피어올랐다. 이건 단순한 실험이 아니라, 세상에 남겨진 것들을 되살리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인터넷과 도서관을 뒤져가며 음식물 쓰레기 퇴비화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유기물은 산소가 풍부할 때 ‘호기성 발효’를 통해 분해되며, 이 과정에서 흙 냄새처럼 구수한 향이 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반대로 산소가 부족하면 ‘혐기성 발효’가 일어나면서 메탄과 황화수소 같은 가스를 내뿜으며 악취가 발생한다는 사실도 배웠다.
나는 먼저 다이소에서 큰 플라스틱 통을 사 와 구멍을 뚫고, 왕겨와 톱밥을 섞어 음식물 쓰레기와 함께 넣었다. 매일같이 온도계를 꽂아보며 발효 온도를 확인했고, 일주일에 세 번은 꼭 퇴비를 뒤집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첫 번째 시도는 두 주 만에 포기했다. 악취가 너무 심했고, 퇴비는 물컹하게 썩어 있었다.
“이건 거의 시체 썩는 냄새 아니야…?”
기대를 안고 시작했던 일이, 점점 냄새와의 싸움으로 바뀌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도 어느샌가 나를 걱정 섞인 눈빛으로 바라봤다.
“고생만 하지 말고 그냥 버려. 혼자 힘으로는 어려운 일이야.”
하지만 나는 오히려 더 이를 악물었다. 실패는 오히려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나는 한 농업기술센터의 블로그에서 ‘음식물처리기 퇴비화 시스템 FCT-2000’에 대한 정보를 접했다. 이 기계는 음식물 쓰레기를 투입하면 내부의 미생물 발효 탱크에서 1차 분해를 진행하고, 그 후 열풍건조를 통해 수분을 제거, 최종적으로 유기질 퇴비를 생산해내는 장치였다.
“하루 처리 용량 2kg… 우리 마을 규모엔 딱이네.”
나는 본사에 직접 연락을 취했고, 3개월 무이자 할부로 기계를 들여왔다. 초기에는 기계에서 나는 소음이 다소 있었지만, 나는 그것조차도 ‘지금 음식물이 흙으로 돌아가는 소리’라며 귀를 기울였다.
나는 함께 사용하면 효과적인 EM발효액도 배워서 직접 만들었다. 고물가게에서 공병을 주워 발효액을 담았고, 설탕, 물, 효모, 그리고 유익균이 섞인 그 액체를 음식물과 함께 투입하면 악취도 현저히 줄고 분해 속도도 빨라졌다.
하지만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려면 무엇보다 ‘원재료’가 필요했다. 자기 집에서 나오는 양만으로는 기계의 가동이 원활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예 커다란 뚜껑 달린 플라스틱 통을 들고 마을을 돌기 시작했다.
“이장님 댁에 혹시 음식물 쓰레기 남는 거 있으세요?”
“어? 아유… 그걸 왜 가져가려고?”
“제가 퇴비로 만들고 있어서요. 버리시는 거 있으시면 저 좀 주세요.”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의아한 눈빛이었다.
“요즘은 저런 걸 연구삼아 하는 사람들이 있다더니… 진짜네.”
“근데 우리 쓰레기를 왜 돈도 안 받고 가져가지?”
누군가는 슬쩍 아내에게 귓속말도 했다.
“쟤, 혹시 좀… 이상해진 거 아냐?”
나는 그 모든 시선을 웃으며 받아들였다. 수레를 끌며 마을 어귀를 돌고 돌아 작은 통에 음식물 쓰레기를 하나하나 담았다.
“이게 다 흙으로 돌아갈 겁니다. 제가 잘 만들어볼게요.”
나는 음식물 대신 그들에게 신뢰를 얻으려 했다. 마을 주민들은 처음엔 수상쩍어했지만, 어느 날부터는 미리 잘게 썬 야채 껍질을 따로 담아두기도 했다.
“오늘은 배추껍질 많이 남았어.”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거 아주 귀한 재료예요.”
나는 그 퇴비를 자신의 텃밭에 직접 뿌렸다. 며칠 후, 마치 식물들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듯 싱그러운 잎들이 돋아났다. 상추는 색이 짙어졌고, 토마토 줄기에는 작은 노란 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이에 마을 사람들도 조금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거 진짜 비료 되는 거야?”
“우리 것도 넣어보면 안 되겠어?”
물론 나는 기꺼이 허락했다. 혼자만의 실험이 아니라, 모두의 자원이 되는 것이 더 큰 의미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뒤, 나는 작은 전단지를 만들어 마을에 돌렸다.
제목은 이렇게 썼다.
『음식물 쓰레기, 흙으로 돌아가다 – 마을 순환 비료 프로젝트』
주민 몇 명이 함께 참여하면서, 마을회관 뒤쪽에는 음식물 퇴비화소가 만들어졌다. 이제 마을 전체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 중 절반 이상이 퇴비로 바뀌고 있었다.
마을 어린이들은 내 집에 와서 퇴비 만드는 과정을 구경하며 이렇게 물었다.
“이거 진짜 똥 냄새 아니에요?”
“아니야, 이건 땅 냄새야. 네가 뿌리면 꽃이 피어나.”
그 말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무언가 신비로운 자연의 순환을 이해한 듯한 표정이었다.
몇 달 뒤, 텃밭은 여전히 정갈했다. 땅은 더 깊은 숨을 쉬었고, 채소들은 유난히 진한 색을 띠었다. 퇴비장은 이제 마을 아이들의 탐구 장소가 되었고, 노인들은 거름 냄새를 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요즘 나는 더욱 더 바빠졌다. 옆마을 사람들까지 나의 집을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가 그 음식물 쓰레기로 비료 만든다는 곳 맞지요?”
“우리 마을도 음식물 처리가 골칫덩이인데, 좀 배워도 되겠습니까?”
처음엔 조심스레 찾아오던 사람들이, 이젠 메모장을 들고 와서는 퇴비통 구조부터 통풍 시스템, 그리고 EM 발효액 희석 비율까지 꼼꼼히 물어본다. 나는 당황하면서도 기꺼이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와 배운 것들을 나눴다.
“처음엔 냄새 때문에 민원이 많았지만요, 뒤집는 횟수랑 수분 조절만 잘하면 생각보다 깔끔하게 돌아가요.”
나는 그들에게 ‘바로 만들 수 있는 퇴비통 도면’과 ‘자원순환 농업 입문서’ 사본까지 나눠주었다. 아이들 눈은 반짝였고, 어르신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이런 게 진짜 공부지” 하고 말하곤 했다.
이제 퇴비장 옆엔 새 표지판이 하나 세워져 있다.
‘자원순환 실험장 – 쓰레기도 다시 꽃이 된다’
나는 그 표지판을 바라보다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제야 뭔가, 제대로 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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