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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생활수기공모(당선작)

제3회 [입선] 여행 (박지환) 제3회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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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illden / 작성일2024-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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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서부터 동해안의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파도는 사람들을 집어삼킬 듯 흰 이빨을 드러내며 다가오다가 이내 산산이 흩어진다. 바닷가는 휴일을 맞아 놀러온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그곳을 지나쳐야 한다. 소금기 어린 향이 아버지의 체취와 어우러져 멤도는 그곳을. 앞으로 나아갈수록 파도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온다. 이따금 코끝을 스치던 아버지의 냄새도 점차 선명해진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바닷가를 지나친다. 내가 찍을게. 카메라를 잡은 한 여자의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란다. 그녀의 흰 블라우스가 눈 앞을 떠나가지 않고 아른거린다. 아버지와 바닷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나는 대문을 닫고 집 안으로 들어와 액자에 걸려있는 아버지의 사진을 들여다본다.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그의 얼굴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그 온기가 파도처럼 높이 피어올랐다가 서서히 잦아든다. 아직도 아버지가 내 옆에 꼿꼿한 허리를 펴고 서있는 듯 느껴진다. 나는 그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다가 곧 지워버리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종이에 깊이 파인 잔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스쿠버 다이빙 다이브 마스터 자격증을 가진 아버지는 은퇴 후 이곳에서 사람들에게 다이빙을 가르쳐주며 지냈다. 그는 무거운 산소통을 메고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그가 내려간 뒤 물 위에는 투명한 기포가 떠다녔다. 아버지의 몸집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그 기포는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그 뒤로 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경찰서에서는 그가 해저 25m까지 잠수하던 중 어선에서 버린 폐그물에 걸려버렸다고, 폐그물에 제대로 걸리면 동물은 물론이거니와 사람도 함부로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했다. 바닷가의 거센 파도는 아버지를 집어삼켰다.


  아버지가 쓰던 목제 책상의 서랍을 열어보니 먼지로 뒤덮인 검은 물체가 보인다. 먼지를 닦 아내니 그것의 매끈한 표면 위로 내 얼굴이 비친다. 그것은 아버지가 쓰던 방수 카메라다. 수심 20m 깊이의 바다에서도 한 시간 동안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는 신형 못지않은 기능을 가진 카메라, 그러나 이제는 출시된 지 3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버린 구형 카메라다. 전원을 연결하자 검은 화면 위로 푸른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졌다. 화면 한쪽에서는 엄지손가락을 위로 치켜들며 수면 위로 올라가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바닷가로 향한다. 해저에 버려진 폐그물들을 모두 처리할 셈이다. 아버지의 다이빙 슈트와 다이버용 마스크를 챙겨 들고 바닷가로 향한다.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을수록 바다가 흰 이빨을 드러낸 채 으르렁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온다. 나는 바닷가를 향해 계속해서 전진한다. 그러고는 아버지가 이곳에서 세운, 그의 손떼가 곳곳에 묻어있는 스쿠버다이빙 교습 센터에 도착했을 때 말한다. 저, 입수할게요. 순간적으로 센터 안에 적막이 흐른다. 그러고는 한 남자가 적막을 깨며 나온다. 한 번 해보렴.


  푸른 바다 안, 수심 깊은 어딘가에서 누군가 버려두고 간 폐그물과 함께 투명한 비닐봉지가 바닷속을 흘러다니고 있었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긴 폐그물을 잘랐다. 오랫동안 바닷물에 불어 표면이 질겼다. 그물에 걸린 SMB에 바람을 주입하자 그물은 물살을 헤집고 점점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버디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는 언제 어디서 폐그물이 나타나 온 몸을 감쌀지 모르기에, 조심하라고 말했다. 나는 쓰레기가 사라진 푸른 바닷속의 모습을 카메라 속에 담기 시작했다. 바다거북과 황어떼가 나란히 헤엄치는 바다의 모습을. 물살을 쫓아 앞으로 이동하는 꼼치가 보였다. 나는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어쩌면 아버지를 삼킨 건 높은 파도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파란 물감을 흩뿌려놓은 듯 새파란 바닷속을 청소했다. 나는 버디와 함께 3년 전 아버지의 흔적이 느껴지는 물속을 여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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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den님의 댓글

Willden / 작성일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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