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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생활수기공모(당선작)

제3회 [장려상] 갈매기가 두른 것 (박종민) 제3회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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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illden / 작성일202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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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으로 갈매기가 떨어졌고 트라우마처럼 뇌리에 각인이 됐다. 내 몸에 걸친 플라스틱은 나를 돋보이게 했지만, 갈매기가 두른 플라스틱은 목숨을 앗아갔으니까. 그날 이후, 트라우마 비슷한 것을 털어내기 위해 내 몸과 삶에서 플라스틱을 조금씩 떨쳐내려고 애쓰고 있다.


이 이야기를 보다 자세히 하려면, 시간을 되돌려야 한다. 한창 플라스틱에 대한 이야기가 매체를 통해 퍼지기 시작했을 쯤부터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 중에 하릴없이 시청하던 뉴스, 버스 정류장의 전광판에서 드문드문 볼 수 있었던 캠페인 영상, 지하철에 앉아 손가락을 굴리며 보던 유튜브 쇼츠는 물론이거니와 당시 담당하던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통해서도 플라스틱에 대한 정보를 접했다. 정말이지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 덕분에 플라스틱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이유에서 우리에게 위험을 가져다주며, 플라스틱을 어떻게 줄여야 하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게 됐다. 더욱이 플라스틱을 주제로 아이들과 토론 수업을 하고 플라스틱을 줄이는 방법을 발표한 학생에게 칭찬 스티커를 붙여주기도 했으니, 전문가는 아닐지라도 플라스틱에 대해서는 박식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나는 인간이고, 누군가는 인간이 참으로 간사하다고 했던가? 플라스틱을 줄여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정작 행동으로는 옮기지 않았다. 왜냐고? 내 주위에서 플라스틱 때문에 죽어가는 생물을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죽은 거북이를 부검했더니 뱃속에 플라스틱이 가득 찬 영상을 봤던 것과 달리 내 앞에서 배를 발라당 뒤집는 길고양이는 로드킬이라면 몰라도 플라스틱 때문에 죽은 일이 없었다. 미세플라스틱이 체내에 흡수되네 마네 하는 그런 정보도 피부로 와닿지 않았다. 플라스틱 때문에 병에 걸리거나 죽은 사람이 주위에 단 한 명도 없었고, 여전히 모두가 플라스틱을 평소대로 잘 쓰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플라스틱에 대한 시큰둥한 반응은 당시의 나에게는 그리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어쩌면 이런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지구 반대편에서 굶어 죽어가는 아이를 보면서 모두가 동정심을 느낀다. 그런다고 해서 모두가 음식을 평소보다 소중히 여기거나 구호 물품을 보낼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커피 공정 무역에 대한 것이나 아보카도 농사가 환경을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보도 요즘은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이가 커피를 끊지 않으며 다이어트 식품으로 아보카도 샐러드는 먹는다. 마음은 아파도 직접 체감하지 않으니 그리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는 상황인 셈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던 ‘그날’만큼은 달랐다. 고향이 바닷가이어서 귀향할 때면 매번 해변을 걸었고 그날도 그랬다. 뜨거운 태양을 가리기 위해 플라스틱 재질의 패션 선글라스를 끼고, 더위를 식히는 데 도움을 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담아, 통기성이 끝내주는 플라스틱 샌들을 신고, 미세먼지와 바이러스를 막아줄 열가소성 플라스틱 소재의 마스크를 쓴 채 말이다. 당연히 휴대폰 케이스도 플라스틱이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온몸에 플라스틱을 거친 채 걸었다. 그러다 언제나 쉬어가던 해변의 정자에 앉아 몸을 기대고 커피를 죽 들이켰는데, 얼음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뭔가 툭하고 발 앞에 떨어졌다. 썩은 갈매기 시체였다.


갈매기의 발목에는 원래 파란색이어야 했을 마스크가 누렇게 변해 걸려 있었고, 갈매기의 날개와 주둥이에는 낚싯줄과 그물이 포승줄처럼 얽혀 있었다. 지금 추측해보건데, 낚싯즐과 그물 때문에 제대로 날지 못했던 갈매기가 정자 지붕의 틈새에 앉아 있다 죽은 것일 테다. 갈매기 시체를 보자마자 곧장 자리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갔지만, 갈매기 시체에 대한 기억은 끝까지 나를 쫓아 왔다. 그때부터 뉴스에서 플라스틱 때문에 죽은 동물을 볼 때마다 갈매기가 떠올랐고, 태도를 바꾸게 됐다. 피부로 느끼게 된 것이다.


마스크는 (미세먼지 때문에 정말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면 소재인 것을 구입해 빨아서 쓰고, 텀블러를 들고 다니면서 물이나 음료를 받아 마시게 됐다. 세탁 세제나 폼클렌징 같이 미세 플라스틱이 있다는 생활용품은 사용하는 양을 줄이고, 그 외 플라스틱 물품도 최대한 대체품을 찾아 바꿔나갔다.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꽤 익숙해졌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물론, 여전히 내 삶 안에는 많은 플라스틱이 있다. 우리 생활에 너무 깊이 들어온 플라스틱이기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플라스틱도 적지 않다. 그래도 이전처럼 남의 일처럼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줄일 수 있는 플라스틱을 찾아서 줄이려고 애를 쓰는 중이다. 눈앞에서 보지 못했다고 행하지 않았으니, 눈앞에서 봤다면 행하는 게 맞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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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den님의 댓글

Willden / 작성일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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