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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질 리포트

산불이 지나간 자리 자연복원이 필요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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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illden / 작성일2023-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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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을 마주하다


3월 중순 한 환경단체의 나무 심기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최근 기후변화 영향으로 봄철 산불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그 피해도 커지면서 우리의 상식선에서 나무 심기는 더 중요해지고 있었죠. 전남 함평균 대동면에서 큰 산불이 나 사흘째인 어제 겨우 산불이 잡히기도 했습니다. 이 사흘 동안 전국에는 53건의 크고 작은 산불이 발생했다고 하는 군요. 이날 다녀온 곳도 산불 피해지역이었습니다. 2022년 봄, 9일 동안 산불로 타올랐던 경북 울진・강원 지역이었죠. 당시 비가 오지 않아 건조해진 날씨로 그 피해가 더 컸는데, 90%가 경북 울진에 몰려있었습니다.  그리고 산불이 난 동안 나무도 탔지만 그 곳에 자라는 나무들에 의존해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도 타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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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기 위해 달려가는 버스에서 화장실도 가고 현장도 조망할 겸 울진에 있는 도화동산이란 곳에 들렸습니다. 도화동산은 2000년 봄, 강원도에서 시작해 울진으로까지 번진 산불을 군민들이 힘을 합쳐 22시간 만에 막아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공원으로, 동산은 백일홍이 많이 심겨 있습니다. 동산 위에 올라서면 동쪽으로 바다가 어렴풋이 보이고, 서편으로 내륙으로 뻗어있는 산들과 그 사이 자리 잡은 나무가 보이는 시야가 확 트인 곳이죠. 하지만 이곳도 2022년 봄을 덮친 화마를 비껴가진 못했습니다. 

도화동산에 오르는 나무 발판이 얹힌 철제 계단은 뼈대가 드러나 있었고, 계단 옆 백일홍 나뭇가지들은 검게 타거나 검은 재의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푸른 빛, 희망인가?


정자가 있는 동산의 정상에서 고개를 들어 바로 앞 산등성이를 보니 언뜻 봤을 때는 푸릇푸릇해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그 위로 푸른 빛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검은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습니다. 그 뒤에 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뜨거운 붙길이 훑고 간 그 땅에 희망이 솟아나듯 푸릇함이 보이는 것에 살아날 수 있겠다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나무 심을 곳으로 갔습니다. 서울에서 온 사람들, 강원과 울진에서 온 15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우리는 2인 1조로 조를 짜고 각 조가 심을 산벚나무 묘목과 괭이를 받아 들고 묘목을 심으러 떠났습니다. 가는 길마다 불의 흔적은 남아 있었습니다. 산마루에 서있는 송전탑은 상상만으로도 오금이 저렸습니다. 만약 산불이 이 송전탑을 덮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산불도 더 커졌을 것이고 이곳 주민들의 피해도 더 컸을 겁니다. 이 송전탑에 의존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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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에는 원자력발전소, LNG발전소 등이 있는데, 당시 산불 때 발전소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소방차들이 동원되었다는 이야기가 고개를 꺾어야 겨우 그 높이를 볼 수 있는 거대한 송전탑을 보며 피부에 와 닿았습니다. 그러나 그 덕분에 이곳 주민들은 산불 진압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해 더 피해가 큰 곳이 부지기수였죠. 다수를 위한 희생을 해야 했고 지금은 그들이 먹고 살던 송이 솔숲이 불타버려 앞으로 먹고 살 것조차 막막해진 이들을 생각하며 과연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함께 나무를 심다


어쨌거나 우리는 묘목을 받았고 불탄 후 나무를 모두 베어버려 말 그대로 벌거숭이 산이 된 곳에 섰습니다. 쇠꼬챙이로 표시해 둔 곳에 우리는 나무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불로 흙이 타면서 표면은 푸석푸석하고 황무지 같았습니다. 150명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산 위에 점처럼 흩어져 있으니 많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언제 다 심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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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목 뿌리가 충분히 들어갈 만큼 괭이로 땅을 파고, 그 속에 우황청심원 크기만한 나무를 위한 영양 덩어리를 두 개 넣어주고 나무뿌리를 넣은 후 흙으로 덮으면 묘목 하나 심기가 끝이 났습니다. 다들 어찌나 열심히 하는지, 한 시간 만에 작은 산비탈 하나가 산벚나무와 소나무 묘목으로 채워졌습니다. 대단했지만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한 번에 와서 심었다면 내 눈앞에 보이는 이 모든 헐벗은 산을 묘목으로 가득 채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생각이 저 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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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황폐해진 자리, 속살은 달랐다


의문도 생겼습니다. 푸석푸석하던 땅을 괭이질했을 때 드러난 땅의 속살 때문이었습니다. 속살 속에는 살아있음이 분명한 나무뿌리들이 있었고, 흙은 검고 촉촉했으며 살아있었습니다. 이미 나무들은 모두 베어진 뒤였습니다. 질문을 던졌더니 산불이 난 지역의 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거기에 묘목을 심어 복원하는 방법과 그대로 두어 자연적으로 복원하는 방법이 있는데 복원되는 기간에는 크게 차이가 없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이 지역 주민들이 산불이 난 흔적을 보는 것만으로도 상처를 받고 있는데다 이곳에 산벚나무를 심고 싶다는 의견을 내었다고 합니다. 



숲을 살린다는 것, 무엇이 최선인가?


산림을 복원하는 데는 크게 조림복원과 자연복원,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불탄 지역의 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묘목을 심어 복원하는 것이 조림 복원, 산불이 난 지역이 자연적으로 복원될 수 있도록 두는 것을 자연복원이라고 합니다. 조림 복원은 경제지, 그러니까 경제적인 이득에 초점을 둔다면 자연 복원은 생태계 복원에 초점을 두는 것이라 보시면 됩니다. 아주 간단히 정리해 보면 그렇습니다. 실제 이 지역을 복원하는 방법에 관해 산림청과 환경단체의 의견 차이가 있었습니다. 산림청이 조림복원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환경단체는 자연복원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했죠. 최종적으로는 자연복원과 조림복원 51.5:48.5 비중으로 진행하기로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환경단체는 2000년 동해지역 산불 지역 복원에 관한 환경부와 산림청의 공동 연구에서 71% 자연복원을 권유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자연 복원이 가능한 산림을 굳이 모두베기(산불 지역의 나무를 모두 베어내는 것을 말합니다)해 인공조림을 하는 목적에 반문을 던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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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베기를 한 뒤어 산. 베어낸 나무를 산 아래로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토양도 손상된다.>


현장에서 괭이로 땅을 팠을 때 드러난 촉촉한 흙 사이로 습기를 가득 머금고 있는 나무뿌리를 발견했을 때, 살아있는 나무도 베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산불 지역에 살아남은 나무는 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2019년 고성-삼척 산불 현장에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당시 다른 장면도 함께 목격했습니다. 바로 산불 현장에서 살아남은 소나무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다는 듯 찐득한 소나무 진액이 소나무 껍질 사이로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마치 소나무가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습니다. 너도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둥치 밖에 남지 않았지만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는 그 나무는 ‘나, 아직 살아있어요!’라고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도화동산에서 본 불탄 산에서 본 푸릇함 때문이었을까요? 스스로 살아남아 보기 전에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의 희망을 생각하다


나무는 말을 하지 않을 뿐, 인간처럼 느끼고 서로 돕고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존재하는 것은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른다고 살아있지 않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나무에 관한 연구들이 말해 줍니다. 하지만 제가 본 산불 후 나무 심기 현장은 그렇지 못하다고 느꼈습니다.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것들을 청소하듯 쓸어버린 자리에 나무를 심는 것은 숲이라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나무를 심는다는 과정과 왠지 이가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심었습니다. 이미 이 산은 '모두베기'되었고 나무라고는 한 그루도 없으니까요. 남아있는 산벚나무를 한 그루를 심으려는데 쇠꼬챙이가 꽂힌 자리에 어려보이는 나무가 보였습니다. 아무리 봐도 오늘 심으려던 묘목들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 굳이 새로운 묘목을 심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른 나무가 함께 자라는 것도 좋지!’라며 가져온 묘목을 심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늘 심기 위해 가져온 묘목이 150명의 힘을 빌려 모두 심겨졌습니다. 오와 열을 맞춰 심겨져 있는 묘목을 보며 희생 위에 올라서는 만큼 자라나길 속으로 빌었습니다. 우리는 모두베기가 된 곳에는 할 수 있는 것이 나무를 심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두베기 와중에  살아남은 그 어린나무도 살아남아 이 숲을 풍요롭게 해주는 시작이 되어줄 수 있길 마음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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