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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막과 안대 빛 공해와 기후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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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illden / 작성일202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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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연착되어 막차가 떠나버린 시간에 인천공항에 도착한 동생은 여섯 시간 뒤에 있을 첫차를 기다리며 공항에서 버텼다. 숙소도 모두 차서 의자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동생이 나는 안스러웠나 보다. 잠깐이라도 잠을 자야 다음날 출근할 텐데, 대낮같은 그 밝은 대기실에서 어찌 자냐 말이다. 걱정되는 마음에 “춥고 밝을 텐데 괜찮겠어?” 물어봤더니 공항 안은 덥다고 느낄 만큼 따뜻했고, 밝은 조명은 안대를 챙겨가서 문제없다고 했다. 아하.

그제서야 동생은 잘 때 내가 뭔가 하느라 불이 켜 놓으면 안대를 하고 잤다는 것이 기억 났다. 잘 자겠군. 걱정을 내려놨다. 


지금 공항에서 노숙하고 있는 동생이 일본에 나가 있을 동안 우리 집에는 내 손님이 와 있었다. 아홉시에는 잠든다는 이 분보다 내가 자는 시간은 두 시간 정도 늦은 편이라, 잘 동안 불을 켜서 잠을 방해할 것이 미안했다. 그분은 괜찮다며, 안대가 있다고 했다. 빛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 안심했다.


새벽 여섯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 잠을 깨기 위해 방에 불을 켰다. 커튼을 걷으니 이제는 불이 꺼진 학원들의 네온사인이 보였다. 자기 전에는 불이 환해 잠을 방해받지 않으려면 이 커튼, 암막커튼을 난 꼭 쳐야했다. 빛에 예민해 작은 불빛에도 잠을 잘 못 자니까.


얼마전 읽은 <빛의 공해>라는 책에서 읽은 내용이 생각났다. 이 책에 나온 내에 따르면 빛에 관한 연구에서 사람은 주행성 동물이라 빛이 있으면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 성분이 분비되지 않아 제대로 잠을 잘 수 없다고 한다. 이는 신체리듬 파괴와 연결되고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빛공해가 심한 곳일수록 불면증, 스트레스 등이 높게 나타나는 것은 물론이다. 밤에 켜는 불이 더 안전하게 해 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것이 범죄율과는 관계없다는 연구들도 나와 있다. 오히려 지나치게 밝아 명암이 분명해지면서 인간의 눈이 급격한 빛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범죄 발생율을 더 높인다는 것이다. 빛 속에 서 있느라 동공이 잔뜩 좁아진 채로 어둠 속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사람과 어둠에서 동공이 충분히 넓어진 채로 모든 상황을 보고 있는 범죄자. 그려지는가?




이뿐 아니라 밤의 빛은 계절이 바뀌어 산란지로 돌아가려는 새들의 길을 방해하고, 나방이나 밤의 곤충들이 짝을 찾는 것을 방해해 개체수를 죽이는 역할을 한다. 필라델피아에서 2020년에 일어났던 건물 앞 수백마리의 추락 사건은 이를 잘 보여준다. 밤에 달빛에 의존해 가야할 새들이 건물의 밝은 빛을 새로 착각하고 날아가다 수백 마리가 건물에 부딪쳐 죽었다. 날이 흐렸고 안개까지 끼어 일을 더 키웠다. 빛 때문에 곡식이 잘 자라지 않아 소송이 붙은 사건이 이미 우리나라에 1990년 대에 있었고, 그 결과 논밭 옆 가로등들은 그곳을 향하지 않도록 방향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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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지구>, (출처 : Human Presence / Light Pollution)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 측면에서 빛공해를 줄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거기에 더해 기후위기를 대응하기 위해서도 이는 필요한 일이 되었다. 빛을 쓴다는 것운 에너지를 쓴다는 것이고, 이는 탄소 배출과 관련된다. 우리나라는 빛 공해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2위인 국가로 밤에 빛이 얼마나 과도하게 쓰이는지 잘 보여준다. 안 그래도 탄소 배출이 높은 나라, 소소하더라도 밤에 불 빨리 끄는 것에서 탄소 줄이기를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우리에게도 좋고 지구에도 좋으니 말이다.


두 사람의 안대와 나의 암막커튼.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밤에 불은 불대로 켜고 그 불빛을 차단해주겠다고 안대에 암막이 만들어지고 있는 시대이니까. 처음부터 밤에 불을 끄면 될 것 같은데 우리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고 밤은 낮처럼 환하다. 저 불빛, 밤에 만이라도 끌 수는 없는 걸까?




글 : 김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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