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우수, 비내리는 체력 Feat: 자극을 통해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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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illden / 작성일2024-03-06본문
운동은 해야겠는데, 이런저런 핑계와 온갖 일들은 나의 운동을 철저히 가로막았다. 그래서 나는 운동을 청룡의 해 다짐 1호로 정했다. 새해에는 운동을 한다고 수시로 반복해서 말했다. 헬스장에 가면 온갖 운동시설이 즐비하지만, 나는 그곳에 흥미가 없었다. 막힌 실내, 꽉 들어선 운동기구, 지속해서 웅웅대는 일렉트릭사운드, 땀 냄새와 환풍기 등등 내게는 다소 부담스러운 곳이었다. 비록 시멘트 길을 걷게 되더라도 야외에서 바람을 맞으며 탁 트인 곳을 걷고 달리고 싶었다.
체중조절과 함께 체력을 올리기 위해 실외 자전거를 마련했다. 집 앞 강변은 기대 이상으로 좋은 운동 장소였다. 덕분에 나는 새로운 자연도 만났고, 지난 몇 년간 산책으로 강변을 거닐었던 횟수보다 더 자주 다니게 되었다. 새들이 북으로 돌아가기 전에 눈과 머리에, 그리고 가슴에 가능한 한 많이 담아 두고 싶었다. 이른 아침이지만 봄을 맞고 있어서 매서운 바람은 한풀 꺾였고, 볼을 스치는 그것은 아주 상쾌하고 시원했다. 운동을 하고 나면, 날마다 조금씩 달라진 자연과 새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나에게 운동이상의 에너지를 전해주고 있었다. 집에서 창문 너머로 흐릿하게 보았던 하얀 새들의 자태는 실로 놀라웠다. 전기를 들이지 않고도 운동을 해냈고 내가 살아가는 자연도 느낄 수 있었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라 더욱 좋았다.
아침마다 늘어놓는 나의 자랑에 큰아이가 강변 바람 맞으며 달리고 싶었나 보다. 저도 자전거를 꼭 타야겠다 했다. 곧 해가 질 시간이기도 했지만, 비가 오겠다던 하늘에 구름이 잔뜩 껴서는 어제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그러나 비가 올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기상청이 틀린 듯했다. 잘 다녀오라고 했지만, 기상청이 아니라 내가 틀렸다. 돌아오는 길, 자전거를 돌리기 무섭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며 비에 젖어 돌아왔다. 그제야 내다보니 언제 이만큼 어두워졌을까? 내일은 24절기 가운데 하나인 비 우(雨)와 물 수(水)가 만난 우수(雨水)였다. 우수를 하루 앞둔 저녁부터 내린 비는 며칠을 멈출 듯 멈추지 않고 부슬부슬 내렸고, 비가 그친 뒤에도 공기는 습기를 잔뜩 머금어서 아파트 계단의 걸레질 흔적이 하루 종일 사라지지 않았다. 해마다 우수 무렵에는 다음 절기인 경칩에 뱀이나 개구리 등 동면을 취한 동물들을 깨우려는 듯 어김없이 봄비가 내렸다. 신기했다.
갑자기 우수에 대해 궁금해졌다. 얼음은 녹아 물이 되고 눈은 되는 시기,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새싹이 나는 시기, 북으로 기러기가 날아가는 시기, 언 땅도 언 물도 녹으며 땅속 벌레들과 물속 물고기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한다. 갑자기 개구리가 잠이 깬다고 자주 들었던 경칩보다 우수가 더 의미 있어 보였다. 그래, 입춘 다음의 절기이니 개구리보다 더 작은 생명부터 움직임을 시작해야 했다.
‘엄마’라는 말이 트이면서 엄마만 연발하는 아기처럼 수시로 ‘우수’라는 단어가 내 입을 통했다. 그랬더니 그랬다.
“요새 농사지어?”
“절기는 4개 정도만 알면 되지 않아?”
“24개를 다 알아야 해?”
나는 우수가 남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 운동을 이끌어준 강변 친구는 2월이 들어서면서부터 돌아갈 준비를 위해 날갯짓을 했다. 강 위를 유난히 날아다니는가 싶더니 어느새 떠났다. 남은 마지막 한 무리도 돌아갈 채비를 하고, 곧 북으로 돌아갈 것이다. 늦어도 경칩 무렵에는 모두 이 강변을 비워줄 것이다.
며칠을 밤을 새워도 끄떡 않던 나의 체력 회복이 점점 늘어짐에 자극을 받으면서 나의 운동계획은 시작되었다. 더불어 지구 온도상승 1.45℃라는 충격적인 소식이 창밖으로 보이는 평화로운 자연과 맞물렸다. 이 겨울이 지나고 나면 내년 겨울에 보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닌가? 너희가 느끼는, 눈(雪, snow)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 겨울은 어떤 느낌일까… 별별 생각이 스쳐 갔다. 엘니뇨현상이 지속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연안의 해수는 최고 온도를 기록했고, 지구상승온도도 최고치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 북쪽으로 날아갈 채비를 위해 배를 두둑이 채우고 날개를 점검하는 겨울 철새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다짐했다. 나 또한 자연의 일부임을 잘 기억하며 자연에 무리 없이 건강하게 체력을 올리겠노라, 내년 겨울에는 우리 모두 더 건강한 모습으로 이곳에서 다시 만나자!
글 김채은